이 시대의 쩐(錢) 이야기
이 시대의 쩐(錢) 이야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0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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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영부인 사촌 김옥희씨의 수갑찬 모습이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젠 삶을 정리해야 할 70대 중반의 여인이 무슨 때늦은 영화를 누리겠다고 대통령과의 인척관계를 팔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한때 잘 나가던 충북 연고의 두 기업인도 지금 타지에서 영어의 몸이 됐다. 한 사람은 돈으로 국회의원 한번 해보려다가 저승사자도 꺼린다는 '한 여름의 감옥생활'을 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만인이 부러워할 정도의 전국구 사업가로 뜨는가 싶더니 졸지에 '구속'이라는 단어로 다시 우리 앞에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당첨금이 이월되는 바람에 지난 일주일간 광풍을 일으킨 로또 신드롬의 대박이 이곳 청주에서 터졌다. 그 부러움의 잔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둥글둥글한 복덩이 신지애가 메이저 대회 첫승으로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휘어잡았다. 일본 선수와 맞서 한 순간도 흐트러짐 없이 선전한 그녀의 경기 모습은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국가적 긍지를 국민들에게 한껏 안겼다. 차라리 아름다웠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신(神)은 때론 야박하게 느껴진다. 바로 그날,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를 보듬겠다며 그 모진 비바람에 맞서 넉넉한 품성으로 우진교통의 노동자자주관리기업을 힘겹게 일궈 온 변정룡씨가 몹쓸 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못가진 사람들의 한(恨)은 더 서럽다.

요즘들어 도심 주택가에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존의 아귀다툼이 치열하다. 파지를 수거해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권역다툼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이런 파지 쟁탈전은 심야시간대로 이어졌다. 남들이 자는 밤에 파지를 선점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들고양이들 못지 않은 서민들의 '먹이 전쟁'이 밤마다 펼쳐지는 것이다. 슬쩍 물어 봤더니 이렇게 해서 하루 손에 쥐는 돈은 3000원 정도란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이 OECD 국가 평균의 2배나 된다는 통계가 나왔다. 오죽했으면 푹푹찌는 지금의 무더위에도 국민의 46%가 아예 휴가계획조차 없다고 하겠는가. 결국은 돈이다. 누구는 돈으로 분탕질하다 패가망신하고, 누구는 하루 풀칠하기도 어려워 거리를 헤맨다. 서민들에겐 참으로 힘든 세월이다.

돈은 냉정하다. '돈 철학'의 원조 게오르그 짐멜은 이미 100년전에 이를 간파했다. 화폐는 인성을 변화시키고 인간의 취향까지 바꾸며 모든 것을 질보다 양의 세계로 이끈다는 것, 결국엔 돈의 교환가치만이 강조되어 본질보다는 기능으로서의 역할만 부각되고 이는 곧 인간성 파괴로 이어진다는 잠언들이 요즘들어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그래서 요즘 인터넷에 나도는 괴담()을 떠 올린다. 40대의 돈은 자신을 떳떳하게 만드는 돈, 50대의 돈은 조금이나마 남에게 베풀라는 돈, 60대의 돈은 구차해지지 않기 위해 지키려는 돈, 70대의 돈은 별로 필요성을 못느끼는 돈, 80대 이상의 돈은 성가시기만 한 돈이라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적어도 50대가 되면 돈버는 것 못지않게 돈쓰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70대 이상이면 마음을 비워야 편하다. 그래야 짐멜의 경고, 인성의 파괴를 피할 수 있다.

지역에서 돈 얘기만 나오면 항상 거론되는 두 사람이 있다. 둘다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주변 사람들한텐 늘 자기를 키워 준 지역을 위해 한일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래도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이들이 언젠가는 하찮은 장학금이라도 희사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다. 이들보다 턱없이 작은 규모의 한 건설업체 사장은 수년전 30억원을 쾌척해 복지재단을 만들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지금도 그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아름답다. 돈이란 이런 것이다.

생사람을 잡은 북한이 또 추방이라는 강공책으로 나왔다. 하지만 '돈의 철학'을 알면 그 이면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김정일은 절대로 금강산 사업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미 북한체제의 질보다 자본주의 사회의 양의 세계, 돈 맛을 안 이상 그렇다. 때문에 그가 옆구리에 찬 전가의 보도 '벼랑끝 전술'도 결국엔 이 범주에서 물타기를 할 것이다.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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