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과 섬
이청준과 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0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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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글로는 말을 다 표현할 수 없고, 말은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깊은 뜻을 길이 남기기 어려운 법입니다.'

8월로 접어드는 아침, 발산리 산책길에서 만난 빗소리의 청량함을 글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는 용렬함에서 이어진 생각입니다.

풀 섶에 떨어지는 빗소리, 여름안개 사이로 내리는 비의 즐거운 운율을 어찌 '후 두둑'이라는 의성어만으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방울방울 물 풍선을 만들다가 사정없이 수면위로 번지는 동그라미들의 끝없는 파장, 그 찰나의 동작에서 떠오르는 자연의 선율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이며, 그 아름다움을 글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새삼 글 쓰는 일에 당혹감이 커지는 사이 소설가 이청준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청준의 소설에는 영화화된 작품이 많습니다.

'서편제'는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남쪽바다 한적한 섬 청산도를 사람들에게 알렸으며, 창이 돋보이는 오정해라는 배우의 새로운 탄생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고통과 그리움을 절절하게 했습니다.

'벌레이야기'는 이창동 감독에 의해 '밀양'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되면서 수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으며, 영화 '천년학'(감독 임권택, 조재현 오정해 주연) 역시 그의 작품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권오룡 교수는 이청준의 소설을 영혼의 내시경과도 같다고 평가합니다.

"(이청준의) 글쓰기를 통해 증언되고 있는 세월은 미처 다스려지지 않은 채 누적된 상처의 후유증과 이에 덧붙여진 새로운 고통으로 신음해야 했던 세월이지만, 이 시대의 아픔을 이청준은 그것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영혼의 영사막에 투영된 상을 통해 동시에 포착해낸다."라고 말합니다.

글로 꾸며진 예술장르로서의 소설과 영상이 주된 표현방식으로 차용되는 영화는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등 본질은 상통하나, 분명 서로 다른 이미지적 차이가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축제'의 경우 소설과의 동반 작업으로 창작되는 사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나, 글과 영상은 아무래도 느낌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소설 '이어도'와 '석화촌' 등이 김기영 감독과 정진우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이청준의 작품이 끊임없이 글과 영상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기까지에는 그 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는 까닭입니다. 한국적 한과 전통적인 정서, 산업사회의 모순, 지식인의 존재에 대한 탐구 등 이청준의 다채로운 소설세계와 사회적 문제의식은 문자를 영상화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말이 끊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금강산에서의 안타까운 말들이 넘치듯 전해지더니, 이제 외교의 곤궁함이 도마에 오르면서 말들이 씹히고 또 씹히는 어지러움으로 8월이 계속될 모양입니다.

그 한 가운데 외로운 섬 독도가 있으니, 유난히 섬 이야기를 자주 한 이청준의 타계가 새삼스럽습니다. 소록도를 주 무대로 그려진 '당신들의 천국'이 그렇고, 환상 속의 섬 '이어도'가 그렇습니다. 또 어촌을 배경으로 물귀신의 주술적 구속력과 강박관념을 다룬 '석화촌' 역시 주인공 '별네'가 (마을)사람들 사이에서의 외딴 섬 같은 존재로 부여되기도 합니다.

그 섬 이야기꾼이 사라진 사이 외로운 섬 독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 있었고, 우리는 지금 독도의 역사적 진실과 그를 표현하는 절절한 글에 목말라하며 8월을 맞이합니다.

시인 정현종은 딱 두줄,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시 글로 섬을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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