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타산지석
오바마의 타산지석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2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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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유럽을 방문한 오바마가 대 환영을 받았다. 독일에선 무려 20만명의 군중이 거리로 나와 그를 환영했다고 한다. 일개 대통령 후보가, 그것도 야당인 주제에 자존심 강하기로 이름난 프랑스에서조차 이런 대접을 받았다니 눈이 번쩍 뜨인다.

전통적으로 유럽인들은 미국 평가에 있어 아주 인색하다.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전파했다는 우월적 관념뿐만 아니라 아예 미국 식(式)에 대해 경멸의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보다 저급하다는 것이다. 특히 다 인종의 난삽한 미국문화를 상징하는 이른바 '용광로(melting pot) 정책'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로 냉소적이다. 여기엔 물질 숭상을 깔보려는 유럽인들의 인문, 이지적 정서가 크게 작용한다.

이에 따른 반작용으로 각종 국제적 현안마다 미국 대통령은 곧잘 유럽 언론의 밥이 된다. 덩달아 이런 미국 대통령에 짝짜꿍하는 유럽의 지도자들도 매도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라크 전쟁을 앞장서 지지했다가 졸지에 '부시의 푸들'이 된 블레어가 그렇다. 부시 또한 유럽의 독한 언론한테는 아예 샌드백으로 폄하되며 곧잘 동네북이 됐다.

그런데도 오바마가 난데없는 환영인파에 묻힌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의 연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독일의 20만 군중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미국인, 독일인 그리고 전 세계 시민들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은 다르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지만, 지구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은 우리를 하나로 묶을 것이다."

과연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이런 의지를 그대로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그 역시 지금 국내에선 도덕성과 자질문제로 진실게임의 도마위에 올려져 있다.

하지만 오바마의 연설은 곧바로 유럽인들에게 현 대통령인 부시의 이미지를 오버랩시켰다. 부시의 호전성과 독선, 패권주의에 식상한 유럽인들이 그 대안을 오바마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상대 국가를 깔아 뭉개며 총부터 앞세우는 '응징'의 폭군 부시보다는, 흑인으로의 출생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상대적 박탈과 고뇌, 좌절 그리고 공존의 절박함을 뼈저리게 경험하며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오바마에게 애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학창시절, 책보다는 야구를 좋아했고 카우보이를 동경했던 '부시' 같은 각(角)진 스타일로는 이젠 더 이상 세계인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결국 유럽인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소통'을 오바마라는 인물을 통해 얻으려 하고 있고, 이를 그의 유럽방문에 맞춰 역사적 현실로 확인하기 위해 거리로 몰려 나온지도 모른다.

쇠고기 파문에 이어 금강산 민간인 피살사건과 일본의 망동으로 코너에 몰린 정부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문제로 또다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자칫 국제무대에서 때려잡자 김일성!을 외치며 북한과 철천지 원수처럼 다투던 60, 70년대의 일그러진 모습이 재현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세계를 품겠다며 실용외교를 천명한 이명박 정부에서 왜 이처럼 북한과 일본 심지어 중국까지 되레 우리를 말아먹겠다고 덤비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첫째는 한글도 깨우치기 전에 영어부터 몰입하는 국가적 내공의 부족이요, 둘째는 강남 땅부자들의 텅빈 머리가 만들어 내는 정책의 필연적 결과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국의 불만, 즉 미국중심의 외교와 냉전적 사고, 경직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도 여전히 보수언론은 연일 정부에 강경책만을 주문하고 있다. 광우병 시위대들을 잡아 족치고 그들에게 민·형사상의 책임을 강력히 물어 공권력을 바로 세우는가 하면, 북한과 일본에 대해서도 눈에는 눈으로 응징하라고 난리다. 전자의 실험은 이미 지난번 종교인들이 거리로 뛰쳐 나오면서 실패했고 후자 역시 외교의 사면초가로 설득력을 잃었는데도 말이다.

소통은 교감이다. 또한 그 교감의 전제는 믿음이다. 국내 문제이건 국제문제이건 신의가 붕괴된 지금의 상태에선 어떠한 어필도 먹힐 수가 없다. 때문에 그 신의를 무너뜨린 원인부터 찾아 손을 쓰는게 정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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