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고 불편하다
창피하고 불편하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1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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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영 일 <충청타임즈 편집인>

1년7개월만에 금의환향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고국에서 바쁜 일정을 마치고 떠난지 며칠됐지만 지난 5일 정우택 충북도지사 초청으로 참석했던 오찬장에서 있었던 그의 음성이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반 총장이 오찬장에서 참석자들의 건의와 질문에 답한 발언중에서 필자의 머리에 진한 여운을 남긴 단어는 '창피하다'와 '불편하다'다. 반 총장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국력에 비해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적고 촛불집회처럼 너무 국내에만 국한되는 이슈에 매달려 있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창피하다'고 했다. 이 얘기는 반 총장이 방한기간중 기회있을 때마다 거론했다.

국제기구의 수장으로서 솔직한 느낌을 전한 것으로 본다. '창피하다'는 우리나라가 좀더 시야를 세계로 돌려 다른 나라를 돕고 무엇인가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해야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뒤집어보면 세계 여러나라가 이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를 돕는 일을 해야 한다는 기대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불편하다'는 오찬이 거의 끝나갈 때 나왔다. 정우택 지사가 "지난해 유엔방문시에도 건의를 드렸는데 답을 주시지 않아 다시 말씀드린다"고 운을 떼면서 청주국제공항의 개칭문제를 꺼냈다. 세계에는 인명을 딴 공항도 있고 국내법으로도 제약이 없음을 강조했다. '청주공항을 반기문공항으로 개칭했으면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말이나 다름없었고 '검토를 바란다'면서 건의를 마쳤다.

반 총장은 이에 대해 "음성과 충주에서 이름을 딴 행사를 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불편하다"면서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임기초이고 일을 더한 다음에 해야한다"고 특유의 부드러운 말씨로 말을 이어갔다. "아직은 시기상조(時機尙早)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정 지사의 건의를 거절했다.

정 지사는 이 말에 머쓱한 기분이 들었을 게다. 자신이 초청한 환영오찬에서 주빈이 던진 말이기에 더욱 그랬을 게 뻔하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찬이 끝나고 기념촬영과 송별악수로 이날의 오찬행사는 마무리됐다. 반 총장 일행이 먼저 엘리베이터로 내려가고 뒤이어 한 무리가 다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남상우 청주시장이 뒤를 돌아보고는 "정정순 본부장, 청주공항은 영원이 청주공항이야. 알았지"하고 의미있는 말을 했다. 이와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탑승자들은 웃음 머금은 얼굴로 내렸다. 남 시장의 말은 메아리로 되돌아올뿐 누구도 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순간 필자는 청주부시장 인선과 청소업무에 대한 감사문제로 뒤틀린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 사이가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했다. 남 시장은 오찬장에서는 말을 아꼈지만 행사가 끝난 다음 충북도 고위공직자(경제투자본부장)에게 타이르듯한 어조로 정 지사의 건의에 항변을 한 것이다. 이 얘기를 정 지사가 전해들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생각해봤다. 반 총장에게는 머쓱할 정도로 체면을 구겼는데 남 시장마저 어깃장을 놓았으니 어이가 없었을 게다.

인명을 이름으로 사용한 대부분의 공항은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후 붙여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존 F 케네디공항'은 본래 '뉴욕공항'이었는데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자 그를 기리기 위해 그해 12월에 개칭됐다. 또 인도의 '인디라 간디공항'은 '팔람공항'이었는데 1986년 5월에 개칭했다. 인디라 간디가 암살된지 약 2년만의 일이다.

청주공항의 개칭문제는 좀더 심사숙고해야 하고 반 총장이 생존해 있는데 그의 이름으로 개칭하기에는 쑥스러운 점이 있다. 또 이 문제로 잠잠해져 가던 정 지사와 남 시장의 불편한 관계가 계속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 총장의 말대로 충북도민은 창피하고 불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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