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달라!
바람이 달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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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강 태 재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지난 7월5일 청주에서 있은 촛불집회 때의 일입니다. 이날부터 날씨가 무척이나 무더웠습니다. 한낮에 잔뜩 달구어진 아스팔트 길 위에 앉아 촛불을 들고 있으려니 연신 땀이 흐릅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도청 앞을 출발한 촛불행진 대열이 청주대교를 건너 사직동네거리를 지나 체육관 앞에 접어들었을 때입니다. 갑자기 청량한 기운이 감돌면서 서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달라!" 뭔 소린지 의아해 하는 일행에게 "이곳에 접어든 순간 바람이, 공기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못해" 그제사 그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 생각으론 왼편의 숲과 오른 쪽의 종합운동장과 예술의 전당 일대 그리고 그 넘어 흥덕사 터 일대에 이르는 구릉, 녹지공간의 영향이라 짐작되었습니다. 중간에 운동장 등 시설물이 들어서 있기는 하지만 일반주거 및 상업지구와는 달리 에너지사용이나 공해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십수년 전 율량동에 거주할 당시에도 퇴근길에 밤고개를 넘으면 공기가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심의 탁하고 더운 공기가 아니라 시원하고도 산뜻한 바람을 체감하곤 했습니다.

문득 법정스님의 글에서 "아빠, 바람이 달아!"라고 외쳤다는 소년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절에 온 어린 아들이 감탄하는 말을 소개하면서 스님은 바람이 달다는 어린이의 외침에서 환경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것이지요. 인구가 밀집돼 있는 도시의 대기가 혼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또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합니다만 도시내에서 특정지역의 대기가 맑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유럽의 도시들이 '녹도(綠道)'를 조성하고 '물길'을 내는데 이어 '바람길'까지 내는 것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청주시 중앙로 일대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하는 것이야 바람직한 일이지만 멀쩡한 길에 장애물 경주코스처럼 온갖 시설물을 설치해 도심의 정글을 만들어버렸습니다. 글쎄요, 설치미술도 아니고 무슨 열주(列柱)라든가요 기둥 같은 것을 죽 세워놓기도 하고 골대같이 막대기둥을 설치한 까닭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도로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면 저의 심미안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런데 다행인지 방아다리까지 연장하는 차 없는 거리 조성에는 이러한 장애물이 아니라 실개천인지 계류인지 도랑인지 하여튼 물길을 낸다고 하니 기대가 되고, 기왕에 물길을 낸다고 하니 하는 말입니다. 청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거개가 하천과 함께 하고 있는데 도심을 관통하여 이 하천으로 흘러드는 소하천 실개천 도랑들이 개발의 이름으로 묻히거나 덮여져 버렸습니다. 이제 이러한 물길을 되살려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청계천 같은 인공방식이 아니라 자연하천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지요. 이에 더하여 숲으로 연결되는 길, 녹도와 도시를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길까지 낸다면 오늘과 같은 찜통더위를 훨씬 낮출 수 있겠다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촛불행진 중에 생뚱맞은 생각이긴 합니다만 요즘 불어닥친 도심재개발사업이 전체 도시계획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바로 이러한 숲길, 물길, 바람길까지 감안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촛불은 자기희생의 상징입니다. 쉽사리 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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