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발을 닮은 압각수
오리발을 닮은 압각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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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체험 문화답사기
한 윤 경 <역사논술 지도교사>

청주 중앙공원에는 문화재도 많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허리가 굵직굵직한 나무들도 여러 그루 있어요. 수령을 가늠하기 어려운 느티나무, 전나무, 벚나무, 은행나무들이 그 주인공인데요. 그들은 요즘 같은 더운 날씨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에 중앙공원의 어떤 식구들보다 인기가 높죠. 여러 갈래로 잔손을 뻗쳐 최대한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는 나무들은 어떤 제품의 에어컨보다 건강하고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주는 웰빙 냉방기라 할 수 있어요.

그중에서도 천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며 청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나무가 있죠. 중앙공원의 터줏대감 역할을 한 공로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5호로 인정받은 나무랍니다.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맞은편에 있는 압각수라 불리는 은행나무인데요.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고 하고 혹은 뿌리가 오리발처럼 넓고 깊게 박혀 있다고 해서 압각수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죠. 가을이면 지금도 변함없이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건강을 자랑하는 압각수는 고려말 충신 목은 이색을 살린 이야기로 더 유명해졌어요. 고려말에 이성계의 반대파로 지목된 상당수의 학자와 정치인이 청주옥사에 갇혀 있었는데요. 이색, 권근, 이림, 이인민 등이 그들이었어요. 조정에서는 이들의 죄를 묻기 위해 관찰사를 보냈지요. 문초가 시작되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며 큰 비가 내려 무심천의 물이 크게 불어났어요. 물이 넘쳐 읍성의 청남문(남문)을 허물고 현무문(북문)까지 흘러가고 성안은 온통 물바다가 되고 관사와 민가들도 떠내려 갔지요.

옥사를 지키던 사람들도 허둥지둥 도망을 갔고, 옥사의 문은 물로 인해 파손되어 억울하게 옥사에 갇힌 학자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멀리 달아날 시간적 여유가 없던 터라 이색은 옥사와 가깝게 있었던 압각수 꼭대기로 올라간 것이지요.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라에서는 '역시 충신은 하늘도 알아보는구나' 하며 이색과 같은 무고한 사람들을 풀어 주었지요.

그 후 양촌 권근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한 다음의 시를 한 수 남겼어요.

'근거없는 소문으로 주 무왕의 아우 주공에게 불행이 미치니

갑자기 큰바람이 일어 벼를 쓰러뜨렸네

청주에서 큰물이 넘쳤다는 말을 듣고

하늘의 뜻이 예나 이제나 같음을 알았도다.'

압각수 나무 밑을 빙둘러보면 시비를 찾을 수 있어요. 우리에게 진실은 거짓을 이긴다는 교훈을 주는 고마운 나무죠.

지난 90년대만 해도 압각수는 사진을 찍는 대표적 배경이 되어 주던 곳이었어요. 결혼, 약혼, 졸업 등 다양한 행사의 배경이 되어 지금도 누군가의 사진첩에 자리하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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