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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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0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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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신 종 석 <시인>

오늘도 바쁘게 일을 하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계절은 여름으로 치닫는다. 눈 닿는 자리마다 자비로운 햇볕의 눈길과 부드러운 바람의 미소가 온 세상을 축복해주고 있다. 산과 들은 초록의 부드러운 그늘을 드리워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유월이다.

초록이 지천으로 발밑을 서성이고 장미가 붉은 색으로 울타리를 감아쥐고 앉아 꼬박고박 졸고 있는 바깥 풍경이 참으로 여유롭다. 일상을 하루쯤 접어두고 일탈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현실은 그것을 늘 허락지 않는다.

마침내 기회가 생겼다. 전라도 광주로 허 시인의 자혼을 축하해주러 갈 일이 생긴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한 일행 중 몇몇 사람들이 이재무시인의 시 '좋겠다. 마량에 가면'의 배경이 된 마량항이 아름답다는데 한번 가보자는 제안에 우리는 기꺼이 따라 나섰다.

이재무 시인의 시에서 '몰래 숨겨놓은 애인을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포구에 가서/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을 살다 왔으면/'하고 표현한 그 곳! '구구절절 환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이 있다'는 마량, 잔뜩 기대를 품고 우리 일행은 그곳을 향해 달렸다.

기대와는 달리 그곳은 15억을 들여 만들었다는 도시의 한 공원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생뚱맞게 변해있었다.

서운한 마음을 뒤로 한 채 강진 가는 길 어느 횟집에서 일박을 하기로 하고 여정을 풀었다. 하룻밤 함께한 시간은 마음과 마음에 물길을 내주었다. 선생님의 호칭에서 언니 동생으로 가까워졌다. 방파제에 앉아서 부르던 노래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까르르 웃으며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밤은 깊어만 가고 웃음소리까지 높아졌나보다. 그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바닷물은 슬금슬금 갯벌을 채워 올렸다. 가로등 불빛도 혼자 듣기가 아까웠는지 별빛까지 돋워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다음날 일행은 변산반도를 옆구리에 끼고 모항에 도착했다 너무 예쁘고 앙증맞아 꼭 껴않고 사나흘 지내고 싶은 곳이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토닥거려줄 바다가 품을 내 주었다. 딱딱하고 거친 세상을 누비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니 부드러운 모래가 신발을 벗기고 발을 정성스레 쓰다듬어준다. 눅눅하게 습기 찬 마음을 백사장에 던져 놓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이 마음마저 보송보송 해지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어 모래장난을 하며 깔깔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친구에게 안부 전화라도 할라치면 바쁘니 하고 먼저 물어보았다, 또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와도 바쁘시죠 하고 먼저 묻었다.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을 한심하다는 마음으로 경멸하면서 살았는지도 모른다. 바쁘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며 사회에서, 가정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산다는 게 사치만은 아닌 것 같다.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나만이 아닌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지나간 시간도 한번 되돌아보고, 친지나 이웃들의 안부도 한번쯤 생각해보고, 먼 훗날 내 모습도 한번쯤 생각해봐야겠다.

바쁘다는 말보다는 하늘 좀 봐! 너 괜찮지, 우리 이번 주 바다에 갈까, 아주 조그맣고 예쁜 모항은 어때 이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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