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피우시겠습니까?
바람을 피우시겠습니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2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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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충주시의회 의원들이 외국여행 한번 잘못 갔다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의원 신분으로 성매매의혹을 받고 있으니 당사자들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냐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 역시 황당하기가 이를데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유구한 역사의 고고함이 살아 숨쉬는 '충주'가 외지인들에게 마치 무슨 옐로우타운처럼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밑바닥의 얘기들이 인터넷 등에 거침없이 나도는데엔 할 말을 잊는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외지 친구조차 "거기 물 좋다면서" 식의 헷갈리는 안부를 물어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태는 하루 빨리 수습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당사자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변명하고 합리화할 것이 따로 있지, 이번 일은 차원이 다르다. 누가 실제로 성매매를 했느냐, 안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드러난 보도와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당사자들에게 어떠한 '책임'이 있는지는 확실해졌다.

그런데도 들리는 말은 '했다' '안 했다' 혹은 '난 아니다' '난 모른다' 뿐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결국 앞으로의 과정은 성인들 사이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배꼽 밑 일'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선데이서울' 수준의 공방밖에 없다. 여기에 한가지 더 흥미를 안길 것은 그날 의원들과 호텔까지 간 여성들이 손에 들었다는 세면도구가 태국제냐 한국제냐는 논란에다 그 용도가 양치용이냐 맛사지용이냐의 사오정공방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그들'을 뽑아준 시민들은 이미 그들을 의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사자들의 선택은 뻔하지 않은가.

논지는 다소 벗어나지만 불륜을 상징하는 우리말의 '바람을 피운다'는 그 의미가 간단치 않다. 사전적으로는 '이성에 마음이 이끌려 허랑방탕한 짓을 하는 것' 쯤으로 해석되겠지만 그런 일탈을 '바람(風)'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우선 재미있다. 상황에 따른 적당한 바람은 우리에게 유익함을 주지만 과하면 탈난다. 여름철 적당한 바람은 시원함을 안겨도 지나치면 태풍이나 돌풍이 돼 사람까지 날려 버린다. 할 말은 아니지만 이렇기 때문에 '바람'은 절제와 책임과 세련미가 전제돼야 탈이 없다.

지금은 뜸하지만 과거 무슨 연휴니 명절이니 할 때마다 방송사가 단골로 재탕하던 추억의 영화 중에 '고백'이라는 것이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셀렘을 주던 미모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한 영화다. 내용은 불륜이다. 천방지축의 아들과 사는 미혼모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아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의 운영자 목사(리처드 버튼)를 만나 소위 연애를 한다. 이쯤 되면 결과는 뻔하다. 당연히 외설을 연상할 것이다. 삶에 지친 여성과 현실 사회에 적당히 속물이 되었을 목사의 불륜, 그러나 이 영화는 남녀간 사랑에 있어 최고의 순수함을 보여 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불륜을 통해 한쪽(여)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다른 한쪽(남)은 성직자로서의 순수한 열정을 다시 회복한다.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인간적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주인공들의 노력 때문이다.

사진작가(클린트이스트우드)와 가정주부(메릴스트립)의 이른바 나흘간의 불륜을 그린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는 또 어떤가. 빨간 나무지붕이 있는 다리 위에서 중년의 독신남자와 기혼의 중년여성이 나누는 사랑은 이 영화의 주제 '일생중에 진정한 사랑은 단 한번 밖에 오지 않는다'는 명제를 가슴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메릴스트립의 혼을 긁어내는 듯한 연기와 표정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설렘으로 남아 있다.

지금 충주의 불륜이 이런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민의 혈세로 주지육림의 술판을 벌이다 그것도 부족해 더 큰 욕심까지 부렸다니, 무슨 할말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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