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청소년이 살 곳이 못된다.
아동 청소년이 살 곳이 못된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0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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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오 희 진 <환경·생명지키는 교사모임 회장>

귀신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은 이 귀신이야기를 좋아한다. 일제강점기에 무라야마 지준은 '조선의 귀신'이란 책에서 예부터 정상적으로 죽지 못한 사람은 귀신이 되어 공중을 배회하는 원귀가 된다는 우리 조상의 생사관을 언급했다. 원귀는 말 그대로 원통하게 죽은 귀신이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모든 죽음은 불행과 슬픔을 느끼게 한다. 특히 원사는 가장 불행한 죽음을 의미하며 비명의 죽음을 말한다.

이처럼 억울하게 사람은 지상의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원귀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거기 멈추지 않고 이 원귀의 해악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그 맺힌 원한을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는 해원적 사생관을 그 중심에 두었다. 이는 억울한 죽음에 대해 굿으로서 맺힌 원한을 풀고 저승에 무사히 보내는 것을 의례로 삼는 민간 무속의 중심적 세계관을 이루었다.

이는 민간신앙의 의례뿐 아니라 보통 '괴담'이라는 형태로 구전되어 왔으며 고소설의 주요 소재로 사용됐다.

고소설에서는 누명의 원한이 맺힌 뒤에 해원의 과정은 원귀의 해악 행위로부터 시작한다. 원귀는 억울한 죽음이 있는 장소에서 먼저 자연의 이변 현상과 함께 인간에게 죽음 등으로 한풀이를 계속한다. 그런데 이 원귀의 복수에는 근원적이며, 종합적으로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는 의도가 압축되어 있음에 유의하자. 원귀의 앙화 끝에는 진실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억울한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염원하는 사필귀정의 요구가 있다. 이 괴담에는 비록 우회적이기는 하지만 악에 가득한 '이 세상'에 천벌을 내리며 소박하나 진실된 삶을 간구하는 백성의 마음에 반응하는 하늘의 응답이 반드시 있다. 이처럼 현실사회의 모순을 뒤엎고 이상향을 염원하는 선선악악의 관념과 해원적 사생관이 학생들의 삶 속에서 작동하는 일은 이성과 과학의 시대에 역설이 아닐 수 없다.

10년 전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귀신이야기로 '여고괴담'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당시 이것이 영화로 제작되는 계기가 놀랍게도 현실성이었음을 영화감독은 말하기도 했다. 입시지옥의 교육현실에 처해 이 억압적 상황에 대한 야유와 이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소망이 귀신의 괴담으로 당시 널리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을 자살로까지 이끄는 입시지옥, 이 지옥을 관리해야 하는 교사의 악역화라는 여고괴담의 공포는 당시 학생들의 학교 체험이 공포 그 자체였기에 마치 실화처럼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또한 이 괴담의 현실성은 영화 상영을 막고자 당시 보수적 교원단체가 상영금지 가처분 등으로 반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오늘 다시 학생들이 괴담에 사로잡혀 현혹되고 휩쓸리고 있으며, 거기에는 배후세력이 있다는 소식이 귀를 어지럽힌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이 온라인 서명과 촛불문화제로 계속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 메시지와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소위 '광우병 괴담'을 두고 한승수 총리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허위사실 유포와 불법집회에 대해 엄정 대처 방침을 천명했다. 검경은 실제로 학교를 방문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전국 16개 시·도교육감 회의를 개최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막기로 했다. 쇠고기 수입 조치로 매일매일 학교의 급식에서 광우병의 위험을 안고 살게 된 중고생들이 먼저 일어서서 전 국민적인 반대의 물결이 일어났다.

올해 미국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내용대로 라면 이 괴담 논란 속에서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겠다. '아동 청소년이 살 곳이 못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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