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신(神)이다
돈은 신(神)이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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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연이은 불상사가 많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최연소 당선자로 깜짝 등장했던 앳된 얼굴의 양정례씨가 어머니에까지 구속이라는 화를 몰고 온 대목에선 더욱 그렇다.

가문의 영광이 될 뻔한 금배지를 달아 보기도 전에 졸지에 창살에 갇힌 당사자들의 영욕은 오죽하겠냐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결코 편치가 않다. 물론 서민들의 입장에선 '돈' 가지고 설치다가 그 꼴이 됐으니 앙아리 보살()이라는 냉소적 카타르시스를 느낄만도 하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재삼 실감하는 것은 돈의 생물성이다. 정치 뿐만 아니라 돈도 뭔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려는 생물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정치와 돈은 서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인지 모르지만 이번 사례를 보더라도 당사자들은 바로 돈의 생물 근성에 고스란히 희생양이 됐다.

문제가 된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주변상황을 과대 포장하거나 가식했다는 것이다. 학력을 부풀리고 직함을 허위로 했다가 들통나는 바람에 이들은 당선되자마자 이를 변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사실 이들의 비극은 이미 그때 예고됐다.

정상적이지 못한 교육과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의 소유자일수록 돈에 대한 의타는 더 크다. 비록 돈으로 살 망정 국회의원이라는 직함은 이러한 신변의 박탈감을 일거에 해소하는 묘약이 되고 그래서 그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비례대표 당선권을 보장받은 것이다.

사회적 위치가 별볼일 없을 때 그 상실감을 보상해주는 것이 돈이다. 그래서 악착같이 벌게 되지만 어느 정도 부가 쌓이면 다시 그 돈 때문에 신분의 포장에 유혹이 끌리게 된다. 이 때부터 돈의 생물기질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돈으로 사람을 포섭하고 직책을 사고 명예를 탐낸다. 졸부일수록 자녀 혼사에 따른 사돈관계는 악착같이 권력쪽으로 맺으려 한다. 이는 대기업의 오너들이 정·관계와 정략적 사돈을 맺는 것과 다름없다. 일종의 지위불일치에 대한 자구책인 셈이다. 돈은 많은데 끗발이 없다든가, 배운 것은 많은데 돈이 없는 경우가 이런 결합의 배경이 된다.

우리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수전노로 각인된 샤일록 역시 궁극적으론 돈의 생물성에 당한 희생양이다.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시대적 배경인 1596년 유럽에선 반유대주의가 휩쓸었고 일몰 후 외출까지 금지당하며 부동산 소유권마저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유대인 샤일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당시 천대받던 고리대금업이었다. 악착같이 돈버는 재미로 심리적 보상을 받던 그가 자신을 경멸하던 상대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면서 박탈감을 성취감으로 돌려 놓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이 때문에 재판에 져 재산을 몰수 당하고 패가망신까지 하지 않았는가. 돈으로 지배하려 했던 게 화근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신(神)과 같은 존재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동창회에서도 가장 설치는 은 과거 우등생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번 친구다. 퇴직이나 은퇴한 사람을 봐도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의 처세는 천양지차다. 현직에 있을 때 막강한 힘을 발휘했어도 퇴직후 주머니가 궁핍하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다.

그러나 돈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잘못 쓰면 언제든지 주인의 목을 죈다. 돈의 가치는 그것을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시장 바닥에서 평생 새우젓을 팔며 옷한벌 제대로 사입지 못하고 번 돈을 삶의 말년에 모두 사회에 기부하는 할머니의 돈과 평생 돈에만 집착하다가 좋은 일 한번 못하고 좋은 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스러져 가는 돈 중독자의 그것은 분명 다르다. 지금 충북대에 전자의 할머니들을 위한 묘역이 조성되고 있다니 참으로 반가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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