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택 옥천군수
한용택 옥천군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2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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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승 환 <충북민교협 회장>

이른 새벽이었다. 운동화를 신고 허름한 잠바를 걸친 채 분주히 돌아다니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느린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에게는 느리게 응수하고, 빠른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에게는 빠르게 응수를 하면서 쇠뚜레를 만져 본다든가, 소 가격을 물어보고는 했다. 그는 소란한 우시장을 오가면서 그윽한 시선으로 소를 응시하기도 하고, 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또 소 주인에게 위로를 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별 이상한 사람은 바로 옥천군의 한용택 군수였다. 그 순간, 목민관인 군수가 전시행정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으로부터 사람을 만나기 위한 방법이 아니겠는가라는 비판적 의문이 들었다. 항간의 말처럼 '표를 먹고 사는 선출직' 군수이므로 투표를 의식한 행위일 것이라는 냉소적 의문도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꼭 그렇게 비판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었다. 새벽시장에 군수가 등장한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처럼 내가 옥천의 우시장에서 한용택 군수와 조우(遭遇)를 한 것은 정천영 때문이다. 충북 옥천에 사는 정천영은 소를 그리는 화가다. 어린 시절 매일 소를 보았다던 그는, 소처럼 우직하게 소를 그리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소는 일하는 소, 힘든 소, 잡아먹히는 소, 얻어맞는 소가 아니다. 소가 주인이고, 소가 편안하고, 소가 즐겁고, 소가 행복한 그런 소다. 현실에서 소는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친다. 노동, 고기, 뼈, 가죽까지 다 인간에게 주고서 단 한마디의 원망도 없이 하늘나라로 간다. 정천영에 의하면 최근에 그런 한국의 소, 민족의 소, 민중의 소가 죽게 생겼다는 것이다. 소야 죽든 말든 반도체나 자동차를 팔면 된다는 경제논리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것이 또 최근 미국에 다녀온 대통령의 정치철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천영이 갑자기 새벽 우시장에서 소를 그려야 하겠다기에 신기할 것 같아서 나도 덩달아 새벽 우시장에 간 날은 옥천장날이었다. 그림으로라도 소를 살려야 하겠다는 정천영의 너털웃음에는 결기가 배어나왔다. 소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화가와 소라는 주제가 그럴 듯싶어 찾아간 옥천의 우시장은 그야말로 생존의 필사적인 현장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펜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티비 앞에 앉아서 서민의 생존을 논하는 것은 모조리 흰소리에 불과하다. 현장과 상황을 모르고 이론이나 이상(理想)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고, 또 분석도 할 수 없다. 예술가나 비평가나 정치가나 행정가나 모두 현장과 현실에 발을 디디고 실천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소란의 현장에서 옥천군수께서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니 그것만 해도 옥천 우시장행은 의미가 있었다.

그러니까 한용택 군수는 5일에 한번 열리는 옥천장에 반드시 나타난다고 한다. 정천영에 의하면 한 군수께서는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라는 전투적인 구호로 옥천군을 살리자고 나섰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시장 군수들께서는 현장에 직접 나간다. 시민들이나 군민들이 보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한용택 군수의 현장 독전(督戰)을 보면서 주민을 섬기는 군수, 군민이 주인인 옥천군, 주민의 뜻을 하늘처럼 생각하는 군수가 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보는 것 같았다. 혹자는 그런 시장 군수를 일컬어 전시행정이나 인위적 연출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고 그런 비판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목민관은 현장의 실재를 알고 행정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군수, 이런 시장이 많은 사회가 아무래도 더 민주화된 사회가 아니겠는가! 발로 뛰는 군수, 뛰는 가슴으로 현장을 오가는 정치가야말로 이 시대의 대중이 원하는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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