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꿈을 품은 아이들
무지갯빛 꿈을 품은 아이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25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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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윤 혜 경 <단양 매포초 교사>

"선생님, 저는요, 어제 집에서 먼저 공부했어요" 우리반 코흘리개 개구쟁이 한명이 집에서 공부를 했다고 자랑이다. "어머, 그랬니. 무엇을 배울지 많이 궁금했구나" 그러자 다른 아이가 얼른 거들고 나선다. "저도 했어요. 그런데 다 아는 거예요."

"그래, 와∼ 우리 반엔 똑똑 박사들이 정말 많네."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에서 처음 입학한 후 한 달 동안은 학교 적응기간으로 우리들은 1학년을 공부한다. 이 과정을 마치고 국어, 수학 같은 진짜() 공부를 시작하자니 아이들이 서로 질세라, 한 마디씩 하는 것이다. '어라, 요놈들이 공부하고 싶어 안달이네' 아이들의 의욕적인 모습에서 무지갯빛 희망을 발견하고는 행복한 마음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8살 꼬맹이들에게는 따분한 선생님의 말씀보다 주변의 여러 상황이 훨씬 유혹적이다.

수업을 시작할 때 보여준 의욕적인 태도는 사라지고 온몸을 움직여대기 시작한다. 아예 돌아앉아 친구들과 제 할말 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아이도 있다. 이 아이들에게는 바른 자세로 앉아서 선생님 말씀을 듣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학습 목표 도달을 위해 박수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주의집중 시켜가며 수업을 마치고 나면 금방 점심을 먹었는데도 허기가 진다. 덕분에 나는 우리 학교 급식소에서 밥 많이 먹는 선생님으로 통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처음 교단에 섰을 때는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의욕이 앞서 내가 뜻한 대로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속상한 마음에 아이들을 벌하기도 하고 독하게 꾸짖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과 마음 통하는 일에는 신이 나서 같이 떠들고 피구도 하고 줄넘기도 하면서 함께 어울렸다. 잘한 아이들에게 상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무엇을 살지 고민하며 문구점에서 상품을 골랐고, 생일을 맞는 아이들에게 주머니돈을 털어 책을 선물해주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아이들을 내 생각대로 끌고 가려했고 내가 좋으면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렇게 정신없이 아이들과 부대끼며 몇해를 보내는 동안 나의 초심은 금방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어린 아이들처럼 퇴색해버렸다. 아니 어쩌면 캔버스에 칠한 원색적인 색깔이 제대로 익어 나름대로 어울리는 빛깔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아이들을 제각각의 빛깔이 나타나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내가 생각지 못한 아이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깜짝 놀라 아이에 대해 단정짓고 속단을 내린 나의 교만함을 인정하고 반성하게 된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감이 없어진 요즘 사회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교사의 위치를 따져보며 교직을 선택한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아이가 아직 집에 안 들어왔다는 학부모의 늦은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할 때도 있고, 잘못을 지적하니 눈 동그랗게 뜨고 교사를 쳐다보는 당돌한 아이의 눈망울을 마주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지난 겨울 참여한 영어캠프에서 교육청 소속 원어민 한 분이 내게 왜 교사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 때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로 시작하는 뻔한 답을 했지만 이젠 내 마음에서 진정으로 답할 수 있었다. "모든 아이들은 많은 꿈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꿈 중에서 정말 소중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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