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사는 곳 히말라야
눈이 사는 곳 히말라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22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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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학과 교수>

세상에는 설산, 화산, 빙산 등 많은 종류의 산이 있다.

그중 높이로 따지면 히말라야가 이런 많은 종류의 산들 중 으뜸이다. 어디 높이뿐이겠는가. 높이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경관도 가히 천하제일이라 칭할 만하다.

허나 이런 말을 구전으로만 들었던 필자에게 히말라야는 그저 먼 나라에 있는 생소한 산이었을 뿐이었다. 그중 가장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이 안나푸르나와 최고봉 에베레스트이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의 히말라야 중부에 줄 지어선 고봉이다. 길이가 무려 55에 달하고, 최고봉인 안나푸르나 제1봉은 높이가 8091m로 8000m 이상의 고산인 14좌의 하나다. 서쪽에서부터 최고봉인 안나푸르나 제1봉, 안나푸르나 제3봉(7555m), 안나푸르나 제4봉(7525m), 안나푸르나 제2봉(7937m), 강가푸르나(7455m)가 열거한 순차적으로 서 있고, 안나푸르나 제3봉의 남쪽에서 갈라져 나온 끝에 마차푸차레가 있다.

이렇듯 높은 산이 어깨를 벌린 채 웅장하게 서있는 안나푸르나는 처음 초입에 도착한 우리들의 기를 죽여 놓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히말라야에서 가장 인기있는 트레킹 코스로 꼽히는 산군은 안나푸르나이다. 네팔 중부 제일의 관광도시인 포카라를 기점으로 짧게는 푼힐 전망대로의 트레킹 코스에서 안나푸르나 등반대의 전진베이스캠프까지의 트레킹 코스, 길게는 안나푸르나 산군의 주변을 일주하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코스 등이 있다. 이중에서 이번에는 가장 편한 코스로 알려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네팔에선 이니셜인 ABC로 통함)트레킹 코스를 이야기하기로 한다.

트레킹을 시작한 첫날부터 우리는 대원들간의 갈등이 시작됨을 알았다. 가이드 2명중 1명은 린포체 수준의 구루(네팔어로 선지식인), 포터 2명중 1명은 30의 짐을 당나귀처럼 지고 날라주어 우린 5도 채 되지 않는 가벼운 짐으로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선택이 잘못돼서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한다, 도중에 하산하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오지 않았다" 등등의 불만들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이번 트레킹 첫날부터 대원 모두를 힘들게 한 사건은 바로 피를 보았기 때문이다.

가장 무더운 7월, 그것도 몬순기(우기)여서 등산객은 없어서 좋으나 거머리가 많다는 알량한 예비지식을 갖고, 설마 거머리가 많다고 한들 얼마나 있을까 했었다. 그것이 오산이었다. 돈이 들더라도 헬기를 타고 가서 3000m에서부터 시작하자는 고급 제안이 나왔을 때 대원중 한 사람의 반대가 있었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원망이 시작됐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후회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거머리에 뜯기지 않으려고 온통 몸부림을 치면서 올라왔기에 모든 체력과 에너지가 하루만에 고갈이 됐다. 거머리는 3000m까지 많으니 빨리 올라가는 길밖에 없다고 구루는 알려주지만 이미 누구라도 걸리기만 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불화의 심정들이었다.

거머리는 한번 달라붙으면 피를 다 빨아먹어서 끝장이 나야 그만 둔다고 하는데 어떻게 들어갔는지 바지를 뚫고, 등산화 바닥을 타고 종아리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살이 조금 나온 목에서도 드라큘라처럼 이빨 자국을 내고 피가 줄줄 흘러내리게 했다. 등산화 속의 양말이 젖어있는 느낌이 들어서 벗어보았더니 양말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다. 짐을 날라다 주는 당나귀 등까지 핏자국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산은 시작이 반이었다. 히말라야는 체력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하찮은 미물 거머리에 발버둥친 우리를 히말라야는 그 넓고 큰 가슴으로 감싸 안아 주었다. 곧 인간승리가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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