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48주년을 맞으면서
4·19혁명 48주년을 맞으면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18 2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김 현 수 <충북4·19혁명 기념사업회장>

지난 1960년 4월19일 청주에서 혁명을 주도했던 한 사람으로 그 날의 값진 희생과 숭고한 정신을 충북도민과 함께 회상해 본다.

4·19 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민주화 운동의 찬란한 금자탑이다.

4·19 혁명은 지난 1960년 3월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이 나라 정치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관권, 금권 그리고 폭력단체들을 동원하여 불법, 부정과 폭력선거를 자행함으로써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희생과 국민의 봉기에서 촉발됐다.

그리고 마산에서 시위 도중에 실종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학생들과 국민의 분노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지난 1960년 4월18일을 기점으로 전국 각 지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당시 청주에서도 청주대학생 전원과 청주상고, 청주농고, 청주공고, 청주고, 청주여고, 청주여자기고 등 수천 명의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하였고, 서울, 부산, 대구에서도 총궐기하여 시위를 하던 중 경찰의 무자비한 발포로 186명의 꽃다운 학생들이 민주제단에 목숨을 바쳤으며, 64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함으로써 자유당의 12년 정권은 종말을 고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값진 희생을 통하여 쟁취한 4·19 혁명을 제 2공화국에서 의거로 규정되었다가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승리로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4·19혁명의 숭고한 이념은 개헌 헌법의 전문에 혁명으로 그 명예를 회복했다.

2000년 12월에 4·19혁명 공로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도록 법률에 명시하였고 전국민의 기념일로 정하여 정부와 자치단체가 주관해 4·19를 기념하는 행사가 행해지고 있다.

나는 그 당시 박정희 군부정권으로부터 포상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을 때도 4·19 혁명을 말살한 군부 쿠데타 정권이 주는 포상은 명예롭지 못하다고 판단되어 포상 신청을 거부함으로써 지난 47년동안 국가유공자로 예우를 받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 추가로 500여명의 신청을 받아 엄격한 심사를 거쳐 2007년 4월 19일 72명이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포장을 받게되어 청주대학교에서 나와 청주농고에서 김상현, 청주상고에서 이용희 등 3인이 포장을 받는 영광을 얻었다. 그 당시 혁명을 주도하고서도 아직 포장을 받지 못한 동지들에게도 하루 속히 포장이 주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존경하는 충북도민 여러분.

4·19혁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 땅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 정의가 실현되고 분단된 조국이 하나로 통일되어 남과 북에 사는 동포들이 평화스러운 나라에서 함께 잘 사는 그날이 올 때에 비로소 4·19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완성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