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보면… 다친다
얕보면… 다친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1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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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손학규, 이회창씨가 총선 후 첫 지방 나들이를 청주로 했다. 이를 두고 두 사람 모두 충북에 대한 감읍(感泣)의 발로라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맞는 얘기다.

손학규의 입장에선 8개 선거구중 무려 6곳에서 당선자를 내 민주당이 호남당이 아닌, 그나마(?) 전국정당임을 내세울 수 있게 한 충북이 얼마나 갸륵하겠는가. 이회창 역시 엉겁결에 당을 만들어 노구의 마지막 힘을 쏟아부으며 선거판을 누볐지만 겨우 대전 충남에서만 대접받은 처지에서 그래도 충북이 한석이라도 만들어 줬으니 그 고마움이야 오죽하겠는가. 총선내내 외쳤던 '충청권 맹주'를 감안하면 비록 감질나기는 해도 어쨌든 충북에서 '면피'는 했다.

이들이 내려 와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좋지만 상황 판단은 정확히 했으면 한다. 과거처럼 어린아이 머리쓰다듬듯 하는 뻔한 립서비스는 제발 안했길 바란다. 충북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느니, 충북 민심이 선거의 바로미터라느니, 충북이 밀어야 대권을 잡는다는 등 등 이런 허접데기같은, 마치 선거 때마다 무슨 큰 인정이나 하는 것처럼 남발하는 '말(言)의 마스터베이션'은 제발 안 했기를 바란다.

아닌게 아니라 충청권의 총선 결과는 아직도 전국에서 회자될 정도로 기발했다. 대전·충남은 자유선진당이, 충북은 민주당이 싹쓸이 한 것이 아무래도 헷갈렸나 보다. 이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최근엔 아주 우려섞인 목소리가 많아졌다.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충청권도 이젠 영남이나 호남처럼 '외곬'의 정치정서가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하튼 이명박 정부에서는 볼 장 다 봤다는 즉, 각종 국가정책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염려다.

사실 충북의 경우는 전자에 있어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97년 대선에선 여당 텃밭이라는 묵은 고정관념을 깨고 DJ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고, 17대 총선 때는 8개 선거구 모두를 민주당(구 열린우리당)에 안겼으며 이번에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야당에 완벽한 승리를 안겼으니 말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쪽에서는 주군에 대한 반란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충청의 정치정서는 여전히 '외곬'의 딱지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만한 역량도 없고 또 이를 견인할 정치력도 아직 없다. 과거 JP의 자민련 바람은 지역의 소외감이 특정인의 부추김으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었지, 영남이나 호남처럼 총체적 민심에까지 이입, 숙성되어 발현되는 내공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JP의 몰락과 함께 자민련의 족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충청권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이유는 다른데 있다. 정책과 전략에서 완전히 실패했고 특히 충북의 경우엔 인물론에서 승부가 갈렸다. 총선기간 내내 한나라당 후보들은 딱 한가지 이미지로만 각인됐다. 선거 홍보물에 오로지 이명박 대통령을 인쇄해 그 이름 석자만을 판 것으로 말이다.

모든 후보가 이것으로만 이미지화하며 힘있는 대통령을 모시고 '뭐를 만들고' '뭐를 하겠다'는 공약만 남발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세종시가 흔들리고 오송분기역이 휘청거리는데도 논리적 설득은 커녕 오로지 '힘'만 내세운 것이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낙하산을 내려 보내고 후보를 멋대로 바꿔치기까지 했다.

얼굴만 믿고 되나가나 배우가 되는 현실에 '카우나 도그나 가리지 않고 배우가 되는 세태'를 개탄했던 최민수 식의 한탄이 한나라당에만 안 들렸던 것이다. 그 방종의 압권이 어머니(육영수)의 고향이라는 이유 하나로 지역에 일면식도 없던 박근령을 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워 표를 호소한 후안무치였다. 결국 이곳 유권자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컸고 그래서 심판한 것이다.

이것이 충청민심의 요체다. 외곬이 아니라 사리분별의 표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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