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은 서럽다
짜장면은 서럽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1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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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짜장면은 맛있다.

어릴 적 지게에 얹혀진 항아리에서 스멀스멀 배어나오던 짜장면 냄새는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풍요롭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시커먼 짜장이 하얀 면발위에 쏟아지고, 그걸 비비는 장꾼의 투박한 손이 부럽기 그지없던 기억.

입학식 혹은 졸업식을 하거나 어머니 치마꼬리를 놓칠세라 부여잡고 5일장 나들이를 따라 나설 때 겨우 맛보던 짜장면.

식탁에 놓이는 순간부터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게 하는 짜장면의 묘한 마력은 지금도 미각을 지배할 만큼 각인되어 있다.

짜장면은 참 맛있다.

시인 안도현은 어른이 읽는 동화 '짜장면'(도서출판 열림원·2000)을 통해 어른과 권력에 대해 말한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표기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그것도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짜장면이라고 쓰면 기어이 자장면으로 쓰라고 가르친다. 우둔한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나라 어느 중국집도 자장면을 파는 집을 보지 못했다. 중국집에는 짜장면이 있고,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이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어른들이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배워서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을 사주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라고 여운을 주는 그의 글은 통렬하다.

그런 짜장면이 지금 서럽다.

피자와 햄버거, 돈까스 등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짜장면의 애틋한 향수를 알지 못한다.

그런 탓에 모처럼의 가족외식에서 벌어지는 메뉴선택의 갈등과 짜장면에 대한 외면은 가끔씩 이 땅의 아버지들을 서글프게 한다.

밀가루 값 인상을 이유로 슬그머니 가격이 올라간 짜장면은 또 하나의 서러움이자 불안함이다.

굳이 애그플레이션(Agflation= Agriculture+Inflation)이나 식량안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표적인 물가상승의 체감 종목인 짜장면 가격의 오름은 서민에게는 자극적이다.

1kg의 소고기를 얻어내려면 8kg의 곡물이 투입돼야 하며, 가까운 중국의 엄청난 육류소비 증가가 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 유발의 원인이 되고 있음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바이오 연료 확보를 위해 지난 해 전 세계 곡물재고량의 절반인 3000만톤의 옥수수가 사용되는 현실을 직시할 때 불안은 더욱 가중된다.

"짜증날 땐 짜장면 우울할 땐 울면, 복잡할 땐 볶음밥 탕 탕 탕 탕 탕수육"이라는 구전노래가 '자장자장 자장면'으로 불린다면 생뚱맞지 않은가.

"어른들은 대체로 이름을 널리 알리거나 크게 내세우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명함을 만들어 돌리거나, 여러 이름이 함께 거론될 때는 그 맨 앞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싶어한다"는 안도현의 말은 인간(특히 기득권 계층의 어른들)의 욕심에 대한 경계의 우회적 표현일 것이다.

한사코 배부르다며 겨우 짜장면 한 그릇만을 시켜 놓고는 게걸스럽게 먹는 자식의 모습을 대견스럽게 지켜보던 모정의 추억.

그 흐뭇함을 닮은 어른들이 많았음 싶다.

"짜장면 속에 들어가서는 자기가 양파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짜장면 냄새가 되는 게 양파"(안도현. 앞의 책)인 것처럼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서민을, 그리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슬기와 덕망이 필요한 시점이다.

입가에 잔뜩 짜장면을 묻히는 아이를 탓하기 보다는 조용히 얼굴을 닦아주는 슬기로운 정치력이 더욱 절실한 요즘,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시끌벅적함이 짜장면과 함께 서민은 서럽기만 하다.

※편집자 주:짜장면의 표준어 표기는 자장면이나 글쓴이의 의도를 반영하기 위해 짜장면으로 표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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