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또 왔구나!
두껍아 또 왔구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0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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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원흥이의 두꺼비가 다시 돌아 왔다고 한다. 조만간 산란을 할 것이고 알∼올챙이∼새끼두꺼비∼어미두꺼비 순으로 변이해 갈 이 미물(微物)의 존재에 청주시민들은 또 예의 다양한 얘기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때(경칩)에 맞춰 나타난 현상이겠지만 눈만 뜨면 총선이니 경선이니 하며 무수한 이기들만 충돌하는 지금, 이런 건조한 것들에서 잠시 벗어나 두꺼비를 입에 올릴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그래도 행복하다.

어쨌든 당초 개발계획대로라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원흥이 방죽과 두꺼비가 살아 남아 콘크리트 구조물이 꽉 들어찬 첨단도시의 한 복판에 '자연의 숨구멍'을 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다. 원흥이를 환경, 생명운동의 상징 내지 메카로 포장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거추장스럽다. 이 역시 인위적이고 인공이다. 이미 많이 훼손됐지만 지금만큼이라도 그대로 있어 주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

89년 혹은 90년 쯤으로 기억된다. 당시 교육계에 출입하던 나는 시내로부터 외곽의 충북도교육청을 잇는 시원한 대로(사창사거리∼미평동)를 왕복하면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야 도로 양쪽이 아파트와 건물 숲으로 뒤덮였지만 그 때만해도 야산과 기름진 들판이 어우러진 농촌의 정경 그대로였다.

그 중에서도 도로 양편으로 있던 방죽 2개에 가끔씩 들러 주변을 배회하는 게 나에겐 아주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워낙 '물'을 좋아한 것도 이유지만 기라성같은 선배를 모시는 쫄따구 기자의 중압감을 거기서 풀어낸 것이다. 하나는 지금의 원흥이 방죽이고 다른 하나는 도로 건너 맞은편, 아마 CBS 청주방송 근처로 추정되는 제법 큰 방죽이었다.

하루는 원흥이 방죽을 찾아 서성이다가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고 눈을 의심했다. 방죽으로 물이 유입되는 도랑을 보는 순간 몸이 딱 멈추고 숨이 콱 막혔다. 수천, 수만마리(결코 과장이 아니다)의 새끼두꺼비들이 도랑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서 엎어지고, 겹쳐지고, 뒹굴고, 물에 떠밀리고 하는 광경은 전율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하면 새끼두꺼비가 자신들의 서식처가 될 인근 구룡산으로 집단 이동하는 과정에서 운 좋게도 그 최고의 순간을 목격한 것 같다.

당시 상황을 결코 글로써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처음엔 두꺼비들의 군무(群舞) 쯤으로 보이다가 잠시 후엔 천상의 오케스트라로 여겨졌고, 그러다가 도랑 전체가 온통 새끼두꺼비의 천지인 것을 보고선 마치 출애굽기의 '모세의 기적'같은 감흥을 느꼈다면 공감하겠는가. 분명 그날, 나는 약속의 땅 가나안(구룡산)을 향하는 두꺼비들의 엑소더스를 생생히 목격했다. 한마디로 자연에의 외경(畏敬)이었다. 이는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그 후 수년이 지난 후에 택지개발로 원흥이 사태가 터졌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동물의 왕국'으로 상징되는 환경다큐가 젊은층 보다는 노·장년층에 특히 인기를 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우선 동물들의 처절한 양육강식이나 식물들의 신비한 생존술이 안기는 흥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근본적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로부터 교육받지도 않았지만 감히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대자연의 순리와 이치를, 아무래도 인생을 오래산 나이 든 사람들이 각별하게 느끼기는데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비약하면 그런 프로를 보면서 자연 앞에서의 '인간의 미약함'을 절감하는지도 모른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환경, 자연을 이용하고 개발할 줄 안다. 하지만 이것도 궁극적으로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알량한 개발기술을 배우고서 마치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한다고 착각하는 것에 대한 응징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 왔다.

지루한 겨울을 나고 다시 원흥이를 찾은 두꺼비 소식을 들으며 한반도대운하를 떠 올렸다면 논리의 억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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