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신년하례식
두 개의 신년하례식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0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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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승 환 <충북민교협회장>

'경부운하는 기필코 저지해야 합니다!' 관운장과 장비를 아우른 장수(將帥)처럼 보이는 충북환경운동연합 염우 처장의 포효가 진동했다. 이어 국회의원 한 분이 '2008년은 시민운동의 르네상스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이명박 정부하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좌표가 저절로 설정되고 말았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는 대립긴장이나 갈등투쟁으로 갈 가능성도 있고 이와는 달리 협력협조로 갈 가능성도 있다. 아직 관계가 설정되지 않았고, 보수를 자처하는 당선자 진용으로 볼 때 진보일 수밖에 없는 시민사회민중단체와의 일정한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데 염우처장식의 결연성이 환호로 이어지면서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한나라당과 관계있는 분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1월3일 목요일 오후 2시,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년하례식이 있던 청주예술의전당 대회의실에서의 일이다.

대표 중의 한 분이 '한나라당도 시민운동의 동지입니다'라고 말했다. 불편하던 심사가 약간은 누그러지면서 불필요한 충돌을 피했다. 이것은 정권을 잡은 한나라당에 대한 화해의 제안이 아니다. 손님으로 온 분들에 대한 예의였을 뿐이다. 1987년의 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시민민중단체인지라 한나라당과는 소원한 긴장관계가 일반적이었다. 지난 시절에 시민사회단체와 한나라당의 관계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일 때도 있었고 동상이몽인 경우도 없지 않았으며, 또 어느 사안에서는 투쟁대결로 치닫기도 했다. 그렇기에 한나라당의 집권에 축하를 드리면서도 어떤 관계가 설정될지 자못 궁금한 것이다.

한편 '2008년 충북시민사회운동 선언'에서는 "충북시민사회단체는 새로이 조성된 경제와 보수 담론 하에서 진보의 희망을 변함없이 유지하면서 충북 사회를 이끌어 가는 동력(動力)을 더욱 활발하게 생산할 것이다. 또한 지구 전체의 변화에 따라서 동질성, 배타성이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와 열린 시민사회의 철학으로 이질성을 존중하고 혼종성을 인정하며 다양성을 지키는 성숙한 사회를 향하여 나갈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정치권력과 자본주의가 결합한 형태로 신자유주의 독재가 실행되는 데 대한 결연한 반대도 표명했다. 이 기조(基調)라면 성장우선, 경제절대를 강조하는 한나라당과 시민사회민중단체와의 충돌은 불기피하다. 하지만 그 층돌은 겨우 세 시간의 시간차 공격일 뿐이다.

시민단체의 신년하례식이 열린 그날 오전 11시, 한나라당 소속의 정우택 지사께서는 이태호 회장과 함께 청주 라마다호텔에서 열린 상공회의소 주관 신년하례식에서 축배의 잔을 들었다. 원래 그날 11시에는 공교롭게도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청주상공회의소의 신년하례식이 동시에 예정되어 있었다. 연대회의는 지혜와 조화의 정신을 발휘하여 신년하례식 시간을 오후 2시로 옮기고 경제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상공회의소 주관 신년하례식이 잘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아마 그 자리에서는 '잘살자, 하면 된다, 충청북도도 일등이 될 수 있다, 13조, 하이닉스'와 같은 경제성장의 구호들이 높은 천정을 울렸을 것이다. 신년하례식이라는 같은 이름이었지만 오전 11시는 '잘살자'고 오후 2시는 '올바로 살자'였던 셈이다.

이 세시간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잘살자'라는 경제보수 담론과 '올바로 살자'라는 정의진보 담론의 거리가 겨우 세시간인데도 우리는 항상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각자의 성에 은거하면서 상대방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기도 한다.

영화 한편 보고 오가는 시간이 세시간이고 괴산 도명산에 오르는 시간이 세시간이다. 영동 난계국악단의 연주시간이나 제천에서 옥천까지 운전하여 가는 시간이다. 우주의 시간에 견주자면, 겨우 문풍지에 스쳐가는 준마의 갈기와도 같은 찰라의 찰라일 뿐이다.

그런데도 '잘살자'와 '올바로 살자'는 결코 행복하게 조우(遭遇)하지 못했다. 세시간을 양보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상생을 발휘한 것처럼 두 가지 담론을 모두 포용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협력과 지혜를 발휘하는 2008년 무자년(戊子年)이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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