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삼, 그가 죽었다
최요삼, 그가 죽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0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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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최요삼, 그가 마침내 죽었다.

안간힘으로 심장 박동을 계속하던 그가 결국 장기기증이라는 숭고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을 남긴 채 세상과 멀어졌다.

남들은 2008년을 시작하는 각별한 희망으로 설레는 사이, 최요삼 그는 결국 6명의 '남'들에게 질긴 생명의 끈을 이어갈 수 있게 하면서 영면(永眠)했다.

그가 세계복싱기구(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1차 방어전에 나선 2007년 12월25일 이후 지금까지의 사이, 해가 바뀌고, 최홍만은 표도르에게 졌으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일거수일투족은 여전히 뉴스의 화려한 초점이 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스포츠의 가치를 '건전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서양격언을 통해 인식한다. 'A sound mind in a sound body'로 번역된 이 말은 원래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is)가 한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바람직할 것이다'가 일부만 와전된 것이다.

바야흐로 스포츠 산업이 대중을 열광하게 하고, 이에 편승한 프로선수들이 스포츠를 통해 부와 명예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면서 기대치는 사뭇 높아지고 한계설정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민속씨름에서 격투기로, 또 유도에서 K1으로, 거칠고 격해지기를 거듭하면서 생명의 존엄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31일 벌어진 두 가지 격투기대회에서 한국선수들이 링에 올라선 것은 최홍만을 비롯해 김영현, 최용수, 정부경, 추성훈 등 모두 5명에 달하며 이들은 모두 졌다.

민속씨름 출신의 최홍만과 김영현, 유도선수였던 정부경과 추성훈, 프로권투 세계챔피언을 지낸 최용수 등 이들의 투사적 인생역정은 가상하지만 궁핍하다.

궤멸 위기에 처한 민속씨름과,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유도인생, 인기가 시들해진 프로권투의 암울한 그늘이 이들을 피비린내 나는 사각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할 따름이다.

인간은 모두 안간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한 버둥거림과, 보다 더 나아지기 위한 욕심도 모두 안간힘이며 처절함이다.

다만 인간이 인간에게로 향하는 무차별적 폭력이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면서 그 소름끼치는 피 냄새에 광분하는 21세기 대중의 현실은 서글프다.

올해 2008년 8월8일 8시에는 29번째 올림픽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슬로건으로 하는 이 올림픽의 개최시기에 숫자 8이 네 번이나 겹치는 것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에 대한 상징성이 있다.

벌써부터 올림픽 출사표가 터져 나오고, 성적에 연연하는 엘리트주의적 발상이 도배되는 현상에서 오히려 이런 상징이 풋풋하다.

인체가 만들어내는 극대화된 아름다움과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지고지순의 가치 창조는 분명 감동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일등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승리지상주의와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무모함으로 생명윤리가 도전받는 일은 없으면 싶다.

선수들의 아름다움은 인간으로서 최상의 가치를 추구함에서 잉태되며, 그 모든 것은 살아있음에서 자랑스러운 법이다.

최요삼, 그는 죽었지만 죽어서도 다시 살아나는 감동으로 끝을 끝이 아니게 했다.

그리고 지난 해 모두 져버린 한국의 격투기 선수들도 새해에는 부디 온 국민과 더불어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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