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노랗게 물들 때면 떠오르는 얼굴
은행잎 노랗게 물들 때면 떠오르는 얼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1.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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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발언대
김 영 숙 교사 <청주 진흥초>

도심의 커다란 학교 건물과 등·하교시간이면 물밀듯이 들어서는 아이들한테 익숙해졌던 나에게 조용한 교정과 한눈에 다 들어오는 아이들의 아침조회 모습은 너무도 낯설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남자 다섯, 여자 셋이 전부였다. 1주일이 지나도록 선생님과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아이, 공책에 낙서만하다 어느새 사라지는 아이가 자꾸 눈에 거슬리고 화가 났다. 그 아이가 이틀이나 결석을 했다. 집 전화는 불통인 채, 순간 먹구름이 나를 덮쳤다.

나중에 엄마와의 통화로 알게 된 사실은 태훈이 아빠는 술만 마시면 아이를 때리고 못살게 굴어서 남편이 모르는 곳에 숨어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충격적인 사실 앞에 담임인 나는 어찌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섰다.

어느 날 사회복지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빠가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게 됐다고 한다. 그 후 태훈이는 무사히 학교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태훈이가 그동안 나를 바라보지 않았던 것은 부모, 어른에 대한 깊은 불신감과 두려움에 대한 경계임을 그때야 알게 됐다. 그 후로 태훈이를 위해 1, 2학년 과정의 국어, 수학을 가르쳤다. 특히 수와 연산을 공부하면서 구체적 사물, 사탕, 먹을 것 등으로 태훈이의 관심을 끌었다. 물론 잘하면 칭찬과 보상으로 먹을 것을 선물로 주었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 태훈이의 옅은 웃음과 흘깃 흘깃 선생님을 쳐다보는 옆 눈길을 느꼈다.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의 징검다리'라는 프로그램으로 부모님들께 매일 편지를 써서 아이들 편에 보냈다. 그 프로그램은 학교와 가정이 연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으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 건강상태, 칭찬할 일 등을 중심으로 부모님들께 보내는 사랑의 편지였다. 부모님들께서도 바쁜 농촌생활에도 불구하고 답장을 꼭 보내오셨다. 나의 관심사는 특히 태훈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날 태훈이 어머니께서는 검은 봉지를 내게 내미셨다. "참기름이에요, 뭐 드릴게 없어서."

민망하게 봉지를 받아든 나는 태훈이 어머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태훈이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학교에도 아침 일찍 가고 그 수첩을 너무 소중히 만져본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태훈이가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일이 줄어들었고, 선생님의 질문에 "네"라는 짧은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관심과 사랑은 아이들의 삶도 바꾸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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