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목적
공부의 목적
  • 박경전 원불교 청주 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4.03.2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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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 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 상당교당 교무

 

무엇을 하든지 목적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기로 하면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아야 하고 그 일의 결과 즉 목적을 중요하게 여긴다. 목적이 분명하고 나에게 어떤 관계가 있느냐에 따라 그 일을 시작함에 충분한 동기유발과 추진력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목적이 결코 성취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를 꼭 이루어야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은 일의 결과가 아니라 일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해보면 안다. 필자는 근래에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단기적 목적은 영어를 잘 하는 것이고 장기적 목적은 세계교화이다. 그런데 영어공부를 해보니 목적이란 것이 꼭 필요한 것만은 아님을 느낀다. 그 이유를 세 가지만 말해 보겠다. 첫째는 영어공부를 하는 그 순간이 재밌고 보람이 느껴진다. 우리가 어떻게든 보내는 시간 중 일부를 더 재밌고 보람되게 쓴다는 말이다. 둘째는 나에게 언제든 도움이 될 것임을 알겠다. 내가 영어를 잘 하든 못 하든 세계교화를 하든 안 하든 영어공부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인가를 했는데 그냥 사라지는 것은 없다. 인과의 진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종교적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말해도 마찬가지다. 질량보존의 법칙이 있다. 물질이 화학 반응에 의해 다른 물질로 변화해도 반응 이전 물질의 모든 질량과 반응 이후 물질의 모든 질량은 변하지 않고 항상 일정하다는 법칙이다. 내가 한 행동이 그냥 사라질 리가 없다. 그게 무엇이든 결과라는 값으로 내게 올 것이다. 셋째는 다음 생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원불교의 내세관은 윤회다. 이번 생의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업과 습을 가지고 다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나이 50에 언제 영어공부를 끝마치고 언제 세계교화를 할 것이냐는 우문은 필요 없다.

이 졸문의 결론은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할 것인지 먼저 고민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라이다. 원불교의 교조이신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일심 공부를 하는데 그 마음이 번거하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는 원인을 아는가. 그것은 곧 일 있을 때에 모든 일을 정당하게 행하고 못 하는 데에 원인이 있나니, 정당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혹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많은 것 같으나 행할수록 심신이 점점 너그럽고 편안하여져서 그 앞길이 크게 열리는 동시에 일심이 잘 될 것이요, 부정당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혹 재미있고 쉬운 것 같으나 행할수록 심신이 차차 복잡하고 괴로와져서 그 앞길이 막히게 되는 동시에 일심이 잘 되지 않나니, 그러므로 오롯한 일심 공부를 하고자 하면 먼저 부당한 원을 제거하고 부당한 행을 그쳐야 하나니라'고 하셨다.

고민해야 할 것은 그 일이 정당한가 부당한가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목적에 경도된 사람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공부하는 사람이 밖으로는 능히 모든 인연에 대한 착심을 끊고 안으로는 또한 일심의 집착까지도 놓아야 할 것이니 일심에 집착하는 것을 법박(法縛)이라고 하나니라. 사람이 만일 법박에 걸리고 보면 눈 한 번 궁글리고 몸 한 번 동작하는 사이에도 법에 항상 구애되어 자재(自在)함을 얻지 못하나니 어찌 큰 해탈(解脫)의 문에 들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이 성품을 기르되 모름지기 자연스럽게 기르고 활발하게 운전하여 다만 육근이 일 없을 때에는 그 잡념만 제거하고 일 있을 때에는 그 불의만 제거할 따름이라 어찌 일심 가운데 다시 일심에 집착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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