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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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4.03.2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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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해토머리가 시작될 때쯤 소나무 이파리가 붉어진다. 기력을 잃은 이파리들은 기어이 떨어지고 그나마 남은 이파리는 앙칼지게 손을 찔러대며 버틴다. 경북 청도의 운문사 사찰 내 반석처럼 넓은 처진 소나무가 있다. 해마다 삼월 삼짇날에 막걸리를 물에 타 기력회복과 영양을 위해 뿌리에 준다. 소나무의 정기를 위해서 막걸리를 준다는데 혹여 회생하지 않을까 소나무분재에 물과 막걸리를 섞어주었다. 고온다습이었을까 환풍 때문일까. 의문이 쌓이면서도 혹여나 푸른 기운을 차리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소나무분재는 앙상한 가지만 부여잡고 있다.

달포 후 회생하지 못하고 고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품어져 나오는 아우라 그 자태에 미련이 남아 한참을 미적거렸다. 풀 한 포기 뿌리내릴 수도 없을 정도로 흙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척박한 산 정상에서도 뿌리를 내리건만 어찌 고사가 되었을까. 귀한 소나무를 분재에 문외한이 키우는 것이 무리였을까. 영원불변이라 고사하지 않을 거라 믿었건만 소나무에 대한 미련을 끊어버리지 못했다. 구불구불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고사 된 소나무 본연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있으니 차마 치우지도 못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대표나무 중 하나로 송목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왕의 어좌 뒤편에 놓았던 병풍 일월오봉도를 보면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과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해는 왕을 달은 왕비를 상징하며 다섯 개의 산은 만물을 생성한다는 오행을 표현했다. 또한 소나무는 오래 사는 영원함을 상징했다. 그 시대의 임금은 단명하거나 일찍 세상을 뜬 임금이 많았다. 해와 달은 영원히 뜨고 지며 장수를 상징한 소나무 임금의 삶을 반영하여 그려 넣지 않았을까. 송백지조 같은 덕목으로 군주의 기개와 지조 있는 태도로 변함없는 마음을 십장생 중 소나무를 병풍에 표현했으리라. 우리 주변에 있는 소나무 꿈에 푸른 소나무를 보면 재물을 상징하는 것이요, 죽은 소나무는 사업이 회복된다고 한다. 소나무와 동물이 함께 보이면 태몽이며 소나무와 해바라기꽃이 보이면 애정의 새로운 시작이다. 이리도 긍정적인 소나무 조상들은 아기가 탄생하면 금줄에 숯, 고추, 솔가지를 달아 신성한 곳을 알리며 삿된 기운을 막았다. 이렇듯 소나무는 인간의 삶에 큰 영양을 미치며 동고동락하고 있다.

소나무를 생각하면 결혼 초 시댁엔 소 두 마리를 키웠던 시아버지 생각에 머문다. 겨울새들의 밥으로 남긴 감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겨울이면 간벌이 시작된다. 그때 소처럼 우직한 시아버지는 땔감을 준비하셨다. 지게 짊어진 잡목 위엔 생솔가지와 관솔, 솔방울도 가득 주워 오셨다. 부엌 한쪽에는 겨우내 거둔 불쏘시개로 쓸 관솔이나 솔방울들이 대나무 망태기에 언제나 가득했다. 자식보다 소를 더 아끼셨던 시아버님은 생솔가지를 묶어 소등을 쓸어주면 서로 교감을 하는 듯 커다란 눈을 껌벅껌벅였다. 겨울이면 사랑채 커다란 무쇠솥에 관솔로 불을 지펴 잘게 썬 짚과 마른풀을 섞어 소여물을 끓이셨다. 소죽을 한소끔 끓이고 나면 등겨를 한 바가지 넣고 소죽막대기로 끓어오른 소죽을 잘 뒤집어주고 익을 때까지 뜸을 들인다. 그때 시아버님은 아궁이에 남아 있는 장작 숯불에 모처럼 온 며느리와 손주에게 가래떡을 구워 주시는 것이 낙이셨다. 노구의 몸으로 숯불 위에 흰떡을 뒤적이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띠셨다.

소나무는 연모다. 늙어도 늙지 않고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저 소나무 강산이 세 번이나 지난 세월 굳은 의지로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끔 동산 오르다 벌목한 통나무들이 쌓여 있는 걸 보면 땔감을 짊어지고 내려오시던 시아버님 모습이 얼비추니 애잔하다. 민초에겐 땔감으로 어좌 뒤 병풍엔 장수를 분재 애호가들에겐 관상용으로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든 소나무 넋을 놓고 바라보는 등 뒤로 따스한 바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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