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손거울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4.03.2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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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친구가 며느리를 맞는 날이다. 참석하기 위해 혼자만의 여행이라 생각하고 여유도 즐길 겸 버스이용을 택했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약간의 시간이 남은 터, 주변을 둘러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들고는 대합실 의자에 앉아 마신다. 모처럼 낯선 곳에서의 호젓함에 커피까지도 맛이 있다.

버스 대합실에는 봄이 물결을 치고 있었다.

학기 초를 맞아서인지 온통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는 그곳의 풍경은 바라보기조차 좋았다. 넘실대는 봄기운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언제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하는 회상에 젖으며 부러움을 애써 감춘다.

대합실 의자에서 버스에 앉아오는 동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매만진다.

그리고 손거울을 찾는다. 혹여 화장기가 들뜨지는 않았는지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남이 보기에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단정한 나를 가꾸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무심코 옆자리에 눈길이 꽂히고 말았다.

대학의 새내기인 듯한 여학생 둘이서 화장을 하고 있는 광경이 볼만했다.

옆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서 아주 열심들이다.

이것저것 순서에 따라 골고루 화장을 하더니 심지어 머리손질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한다.

내 시선은 상큼함을 불러왔다. 마냥 예쁘게만 보였다. 만약 그 시절의 나였으면 저렇게 과감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이윽고 휴대폰을 꺼내든다. 무얼 하려나 하고 돌아다보니 자기모습을 휴대폰의 카메라에 담느라 또 한 번 자신 있게 포즈를 취하는 중이다.

모든 것을 끝내고는 유유히 탑승구로 걸어 나간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안보일 때까지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저 넘쳐나는 젊음의 향기가 부럽기만 했다.

솔직히 젊음 앞에서 내 존재를 확인했다고나 할까.

한참이나 딸 같은 낯선 이들에게서 과거와 현재의 나를 쫓아가는 미묘한 감정에 부딪히고야 말았다.

어느새 내 손에 들려있던 손거울은 의자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위축된 자신감이었을까. 혹여 누가 볼 새라 엎드려서 거울속의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모습이란 상상만으로도 어색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몰래 거울을 보아야 했을까. 방금 대합실 의자에서 당당하게 거울을 보던 여자애들처럼 왜 그러지 못했을까. 혼자 슬며시 웃는다.

과감하고 선명한 젊음 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춤거린 행동의 일면이었다.

그렇지만 조금씩 희미해져가는 나의 젊음이 그들과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남들의 눈에는 분명 대비될 만큼 차이를 느끼고 말았으리라 짐작한다. 편견일지라도 그 곳은 공공장소가 아니었던가. 나이든 여자가 상황에 따라 지키고 싶은 약간의 체면치레였으리라.

아래를 향하는 손거울에서 내 얼굴이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눈가에 잡힌 주름사이로 번진 화장기가 보인다.

약간의 파우더로 손질해준 다음 말끔해진 기분이 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손거울의 임무는 끝이 났다. 그러나 더 큰 마음의 거울이 내 삶 전체를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목적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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