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타는 남자의 봄 타령
봄 타는 남자의 봄 타령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4.03.2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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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봄입니다. 요한 시트라우스의 봄의 왈츠를 듣습니다. 군무하듯 펼쳐지는 생명과 희망과 환희의 선율에 절로 몸이 들썩입니다.

맨발걷기를 하는 용정산림공원도 봄옷으로 갈아입느라 분주합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초목들이 기지개를 펴고 경쟁하듯 연초록 잎을 피워 올리고 양지바른 골짜기에는 성질 급한 진달래가 꽃망울 터뜨리며 길손을 유혹합니다.

새들의 지저귐도 청량하고 활기찹니다.

새삼스레 봄을 직시합니다. 사계절 중 여름 가을겨울은 두 자이고 봄만 한 글자입니다.

그건 아마도 봄이 짧아서 일겁니다. 겨울인 듯 여름인 듯 있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계절이어서 눈여겨보라고 봄이라 명명했나 봅니다.

문득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라고 한 폴란드 격언이 생각납니다.

봄은 처녀처럼 부드럽고. 여름은 어머니처럼 풍성하며. 가을은 미망인처럼 쓸쓸하고. 겨울은 계모처럼 차갑다는 폴란드인의 사유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사계절을 여인에 비유한 것도 그렇지만 봄을 처녀에 비유한 건 압권입니다. 처녀처럼 유효기간이 짧고 아름답다고 봄이라했으니 말입니다.

`봄바람은 혜풍(惠風), 여름바람은 훈풍(薰風), 가을바람은 금풍(金風), 겨울바람은 삭풍(朔風'이라 했던 선인들의 말도 뇌리를 스칩니다.

봄바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대지의 초목들로 하여금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하니 혜풍입니다.

모름지기 봄은 생명이고 희망이며 환희입니다.

고목처럼 메말랐던 앙상한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는 건, 얼어붙었던 땅에서 녹색의 새 생명들이 움트는 건 감격이고 축복입니다.

들판에 꽃이 피고, 벌 나비가 찾아오고, 종달새가 지저귀고, 냇가에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봄.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다 입니다.

봄은 늙은이도 청춘이게 하는 신묘한 계절입니다.

일반적으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시절을 청춘이라 부르는데 이는 물리적 정의입니다.

화학적 청춘은 정신과 기백에 깃듭니다.

세월을 많이 먹어도, 몸의 기력이 쇠하여도 푸른 봄의 기백이 샘솟듯 솟구치면 언제나 청춘입니다.

그렇습니다. 푸르른 봄은 청춘이고 희망입니다.

봄은 환희입니다. 엄혹하고 음산했던 겨울터널을 온전히 빠져나와 봄 햇살을 받고 봄기운과 봄의 정취를 누릴 수 있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는 환희입니다.

봄은 바라봄입니다. 약동하는 뭇 생명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등한시했던 가족과 이웃들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성찰하는 봄입니다.

잘 살고 있는 건지, 살날은 얼마나 남았는지, 남은 생을 어떻게 갈무리할 건지에 대한 자문과 자답을 해보라는 봄입니다.

각설하고 우리사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희망의 봄이 왔는데도 갈등과 극한대립으로 퇴락하고 피폐해져가고 있어서입니다.

작금의 정치판과 의료대란이 이를 웅변합니다.

국리민복은 안중에 없고 패거리들의 이익만 탐하는 정치놀음이 자행되고 있고, 환자를 돌봐야할 의사들이 업권수호를 위해 동맹파업을 하고 있으니 사회가 온전할 리 없습니다.

활력을 잃은 사회와 희망이 없는 공동체엔 봄이 와도 삭풍이 붑니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극성을 부려도, 시국이 어수선해도 봄은 봄다워야 합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정호승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봄도 짧고 인생도 짧습니다. 함께 왈츠를 춥시다. 즐겁고 신나게.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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