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먹은 이파리
벌레 먹은 이파리
  • 연서진 시인
  • 승인 2024.03.1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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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서진 시인
연서진 시인

 

바닥의 나뭇잎을 주워 들고 색의 종류를 헤아려 본다. 지난가을에 색연필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한 장의 이파리에 많은 색이 들어있다. 빨강, 진한 빨강, 연한 빨강, 초록색과 심지어 검은색까지.

색연필화를 그리면서 색의 다양성에 놀랐다.

한 송이의 보라색 수국에 그렇게나 많은 보라색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색의 세계에서 개안한 느낌이었다. 보통 보라색, 짙은 보라색, 연한 보라색, 보통 분홍색, 짙은 분홍색, 연한 분홍색에 마알간 흰색까지 들어있는 것이다.

방금 주워 든 이 복잡한 색깔의 나뭇잎은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곱게 물든 매끈한 잎도 많지만, 상처 많은 이파리에 관심이 간다. 잎에 새겨진 흔적이 우리네 삶의 상흔 같아 유독 마음이 간다.

오래전, 음성으로 이사 왔을 때의 일이다. 모든 걸 잃고 쫓기듯 내려온 나를 기다리는 건 낡은 주택에 부엌 딸린 단칸방이었다.

불편한 생활은 계속되고 어떻게든 이사하고 싶은 나는 남편에게 인근 아파트 전세가 나온 교차로 지역 신문을 보여줬다. 대출이 많은 집은 위험하다는 남편의 만류에 울컥하는 감정이 솟구쳤다.

“그동안 살펴보니까 이 동네 아파트 대출 없는 집은 없더라. 설마 무슨 일 있겠어?”

아이처럼 울며 우기는 나의 말에 남편은 말이 없었다. 그때는 아이 둘과 뒤바뀐 환경에 몸도 마음도 몹시 힘들어 우겼는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만든 행복은 얼마 가지 않았다. 집주인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고 아파트는 경매에 들어갔다. 낙찰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우리에게 돌아온 돈은 전세금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남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잘못될 것을 알면서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남편, 곤란한 처지의 나를 위로하는 남편 앞에서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탓하지 않고 보듬어주는 사람, 이 사람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고 다시 일어서고야 말겠다고….

남편과 나는 앞만 보고 달렸다. 최선을 다하면 뭔가 앞날이 보여야 하는데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런 말이 있던가. 안 좋은 일은 떼로 몰려온다는.

자동차 사고 등등의 불행이 우리 삶에 뛰어들면서 우리를 괴롭혔다. 삶의 황금기 사십 대에 일어난 일이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연거푸 찾아드는 불청객은 우리 부부를 향해 포기하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조건 힘을 내는 수밖에 다른 수는 없었다.

출근하며 운전할 때는 큰소리로 주문처럼 외쳤다. `연 서진, 너는 할 수 있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

몇 번의 언덕을 넘고 비탈길을 지나 마침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 더 별일은 없겠지 하고 마음 놓을 때쯤, 원치 않는 손님이 또 내 삶에 끼어들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것이다.

곱게 물든 단풍나무를 올려다본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어른거리는 하늘이 파랗게 빛나고 있다.

온통 붉을 줄 알았던 단풍나무엔 아직도 물들지 않은 초록색 이파리도 있고, 끝자락이 말라 꼬부라진 이파리도, 벌레 먹은 이파리도 있다.

고운 단풍잎만으로는 한 그루의 아름다운 단풍나무가 될 수 없었나 보다.

나의 삶도 좋은 일, 궂은일, 온갖 일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 아닐까.

그래서일까. 벌레 먹은 이파리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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