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이다
개판이다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4.03.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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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유모차에 개 세 마리를 태우고 중년 부인이 지나간다.

강아지가 든 백팩을 메고 청년이 지나간다.

놀이터에서 노시던 할머니가 강아지 밥 줘야 한다며 집으로 가신다.

젊은 남녀가 강아지 한 마리씩 데리고 지나간다

교차로에서 국회의원 예비후보들이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고개를 숙인다.

한 여인이 유모차 아래위에 개 다섯 마리를 태우고 한 마리를 안고 가자 지나가던 행인이 뒤돌아보며 한마디 한다. “개판이다.”

`개판'이란 말,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지역과 구역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지역에는 사람 수보다 짐승 수가 많은 지역도 있다. 거리에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길이나 들에서 고양이나 유기견은 쉽게 만난다. 멀지 않아 개들이 우리도 투표권을 달라고 떼거리로 거리에 나서지 않을까? 황당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공리주의를 앞세워 개체 수가 많은 개에게 왕관을 씌워야 한다고 왕왕거리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우리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학습했다. 지혜로운, 슬기로운(호모사피엔스)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생물종의 상위에 올려놓고 다른 생물체에 `개'라는 접두어를 붙여 하위 취급을 한다.

개새끼, 개꿈, 개나발, 개죽음, 개꿈, 개차반, 개살구, 개망신, 개떡, 개수작, 개고생 등 의미는 다르지만 개딸까지 등장시켜 `개판' 문화를 형성해 나간다.

현 시대를 직감하며 주위를 잠깐 둘러본다. 인간에 의해 진화하는 AI는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고 고령화, 저출산으로 줄어드는 인구에 비교해 애완동물의 개체 수는 날로 증가할 추세다. 지금도 어느 가정에는 사람보다 짐승이 많은 집도 있다.

우리는 동물의 한 종으로 짐승과 인간을 분리해 부르지만 짐승만도 못한 인수들도 있으니 인간보다 나은 짐승들은 짐승이라 명명하는 것에 반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애완동물 가구 시장 규모가 2022년 38억 1000만달러, 2023년 40억1000만달러에서 2030년 60억9000만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애완동물과 관련한 직업을 유망 직종으로 전망하는 점과 애완용품이 시장 경쟁에서 선망의 대상에 오른 점을 감안한다면 애완의 시대에 도래, 아니 진입했다. 위 통계를 미루어본다면 가정과 가족이라는 범위도 변화하지 않을까?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어 사람이 살아야 할 집에 개와 고양이가 주인 자리를 두고 권리 다툼을 할 것이다.

어제는 요람을 들고 말을 건넨 중년 여인에 붙들려 거리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요람 안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눈곱이 낀 채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쳐다봤다. 고양이 주인도 아닌 여인이 병든 길고양이가 축 처져 있는 것이 안쓰러워 적금을 깨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검사하고 치료하는데 15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거주지와 행색으로 보아 살림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니 집에서는 키울 수 없고 데려온 곳에 갖다 놓으려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요즘은 직장이나 학업으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바쁜 일과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외로움을 애완동물에 의지하며 위로를 받는다. 사회적으로 유기견(遺棄犬)과 유기묘(遺棄猫)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아주 단호하다. 머리에 핀 꽂고, 예쁜 원피스 입고, 앙증맞은 구두를 신은 강아지를 앉고 이웃 동생이 “언니, 우리 비숑 프리체 이쁘지?”하며 뽀뽀를 한다.

어디에서 개가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다. 니들이 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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