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은 울리지 않았다
벨은 울리지 않았다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4.03.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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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오늘도 벨은 울리지 않았다. 어느새 한 주가 가고 또 한 주가 지나갔다. 늘 그랬듯이 그들과 돈독한 자리를 함께 한 후 만날 날을 기약한 바는 없었지만 무언으로 그 다음 한 주를 벨소리로 기약한 것처럼 헤어졌다.

한식과 그들은 매주 한번 친목을 위해 한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다시 한주가 찾아오면 한식은 곧장 반가운 벨소리에 부름을 받고 하던 일을 대충 접고는 약속이 지시한 대로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한식은 정년퇴직을 하고 난 후 몇 해를 보냈다.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퇴직 후 하는 일 없이 집에만 있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일이라는 것이 조건에 부합되기란 쉽지 않아서였다. 이게 맞으면 저게 틀리고 저게 맞으면 이게 못마땅했다. 그나마 괜찮다 싶으면 또 다른 조건에 부딛쳤다.

또한 하루를 보내기가 가는대로 되는대로 맡겨두면 갈 것 같아도 그 또한 마음대로 굴러가게 모양새를 그냥 두지 않았다.

무엇을 배우는 일도 누구하고 노는 일도 하루를 즐기며 보내기란 만만치 않은 버거운 시간들이었다. 소외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료함과 고독은 소외당한 것과 별 다를게 없어 보였다.

직장에 있을 때에도 그런 증상은 말년이 되어서 서서히 다가왔다.

젊은 직원들과 점심 때가 되어 식사를 같이하려고 그들 곁으로 다가가면 그들은 별 이유도 없이 어려워하거나 괜시리 기피하는 경우를 종종 느낄 때가 있었다. 평소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돌이켜 생각해 보지만 뒤늦은 시간 속에 공간은 이미 멀리와 있는 듯 했다.

한식에게 이젠 한 주에 한 번 벨이 울리기를 바라며 사는 것이 낙이라면 낙이었다. 그렇다고 그들과 함께 하는 자리도 공감대가 허락된다 하여도 시간이란 여건의 눈치를 엿보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일주일 중 주말의 이틀과 월요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 중 사일이지만 화요일은 드물게 벨이 울리곤 하였다.

화요일을 보내고 나면 수요일에 기대가 오후 네시를 넘는 순간 공연한 긴장이 들뜸으로 신경을 곤두서게 하였다. 시간이 흐르다 오후 다섯시를 넘어갈 때면 막바지 기대감은 고조에 올라 목마름을 더해가지만 그마저 시계 바늘이 선을 넘고 나면 풀죽은 실망감이 공연히 엄습하기 시작했다.

결국 오후 다섯시 반을 넘어서면 그 날은 벨이 울리지 않는 날이라고 결론을 스스로 내리며 벨소리를 접었다.

그 다음날 목요일이 돌아오면 그 날은 가장 큰 기대감으로 벨소리를 기다렸다. 벨소리가 목요일에 가장 많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혹여 한 순간을 놓칠세라 노심초사 신경은 벨소리에 쏠려 있었다.

그런 날은 기대했던 시간까지 벨이 울리지 않으면 여섯시까지 혹시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울리지 않는 벨소리에 끝내 실망으로 주저 앉고 말았다.

그 다음 금요일이 돌아왔다. 행여 어제 홀린 시간이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하는 한가닥 희망으로 벨소리를 기다렸다. 벨소리는 묵묵무답으로 시간과 함께 흘러갔다.

그렇게 벨소리를 듣지 못한채 금요일이 흘러가면서 한 주를 끌고 다음 주로 넘어갔다.

금요일에 정적이 벨소리 끊긴 뒤안길로 밤이 찾아오고 어둠속으로 고독이 밀려 올 때면 방황하는 나그네처럼 한식은 쓸쓸히 혼술을 청하여 고독을 달래곤 하였다.

술잔에 녹아드는 고독이 벨소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벨은 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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