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봄나들이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4.03.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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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봄이 왔음을 땅속에서는 새싹이, 나뭇가지에는 꽃눈과 잎눈이 날이 다르게 손짓한다. 그럼에도 요즘은 얼마나 변덕스러운 날씬지 오전과 오후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가 흐렸다가 비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쌀쌀한 날이라고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서면 해님이 구름 속에서 얼굴을 비추어 포근한 날씨가 되어 입고 나온 외투가 무색하다.
때론 초미세먼지라 하고 흙비라고도 하고 몸에 해로운 중금속이 섞여 있으니, 바깥출입을 삼가라고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며칠을 두고 오전과 오후의 날씨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흐렸다. 빗방울도 후드득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한다. 종을 잡을 수가 없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력함에 시달리는 아버지에게 봄나들이로 기분 전환해 드린다며 토요일을 택해 금요일 밤에 인천서 막내딸 가족이 왔다. 아침 일찍 준비하는데 점점 어두워져 망설여진다. 등산을 못 하면 설 연휴에 갔던 신토불이 점심이나 드시고 오자며 출발한다. 문의 쪽 딸기밭을 보더니 사위 “앗싸! 기대하시라! 오는 길에 딸기밭으로 모시겠습니다.” 아이들 “앗싸! 신난다.” 딸 역시 “우리 신랑 멋져.” 온 가족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소리를 들으며 나갈까 말까 망설였던 무거운 마음을 딸기밭의 만남으로 밝아진다. 다복한 가정을 꾸미고 사는 딸의 가정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음침한 날씨인데도 목적지인 화양동 주차장에는 벌써 많은 차가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우리와 같이 정해 놓은 날이라 왔겠지 싶다. 햇볕은 없지만, 봄기운이 살갗에 닿아 아이들이 놀기에는 무난한 날씨다. 우리 여섯 명의 행보는 7살 난 손자와 초등학교 1학년 손녀의 인솔하에 어른들의 발걸음은 시작되었다.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의 눈에는 길가에 떨어진 나뭇가지가 신기한 장난감으로 보이는지 하나둘 주워 가슴에 안고 집에 가지고 간다며 놓지를 않아 저들의 발걸음이 점점 늦어진다. 하여 아이들과 딸은 남겨놓고 사위와 우리 부부는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설 연휴에 두 딸네 가족과 함께 와 보던 소나무 위에 핀 눈꽃을 보면서 감탄했던 설경이 기억난다. 오늘은 눈꽃도 잎도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조화를 이룬 노송과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절경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넓은 암반 위로 굽이쳐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을 눈으로 보며 물소리를 귀로 들으니, 파이프를 타고 흐르는 고운 악기의 선율 소리로 들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울창하게 자란 잡목들이 막아 길에서 행보하면서는 볼 수 없었다. 오늘은 개울 물을 보면서 바람 소리와 함께 물소리를 들으니 봄의 소리로 들려 무척 감미롭다.
어린 시절 소풍 와 보던 옛 화양구곡의 명승지 면모를 다시 보다니 나는 세월에 떠밀려 이렇게 변했는데 신기하리만큼 변하지 않은 자연이 고맙기만 하다. 사방을 둘러보니 개울을 보여주기 위해 잡목을 제거한 흔적이 보인다. 걸으며 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다니 가슴이 탁 트인다. 잡목을 제거하라 건의한 그분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대로 개울의 풍경을 감상하며 끝까지 걷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뒤에 처져 있는 세 식구를 생각하고 여름 방학에 도시락을 가지고 와 아이들과 바위 위에서 물놀이하러 오자고 약속하고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그들 역시 재미있게 논 것 같았다. 한 가지 아쉬움은 커피 판촉 캠페인 하는 곳에서 우리만 따끈한 커피를 얻어 마신 게 미안하다. 미안한 마음에 업어줄까 등을 돌려대니 손자가 좋다고 뛰어와 업힌다. 사위도 내 마음과 같았는지 딸에게 “아빠가 목말 태워줄게”라며 큰아이를 어깨에 올려놓아 만남의 즐거움을 준다.
우리는 화양동 쪽으로 오면 정해 놓고 가는 식당이 있다. 길가 간판도 없는 허술한 가정집에서 올갱이국을 아주 맛깔스럽게 잘하는 집이다. 두 사위가 이곳에 오면 맛이 좋다며 기분 좋아했던 식당이므로 오늘도 점심을 먹으러 이곳으로 왔다. 첫 수저로 맛을 보더니 역시 이 맛이야 한다. 지금도 역시 간판은 없다. 그렇지만 7년 전 KBS 한국방송에서 6시 내 고향 신토불이 올갱이국으로 ‘맛 따라’ 프로에 방영된 사진이 거실 벽에 걸린 것을 볼 수 있다.
약속한 딸기밭으로 왔다. 먹으며 마트 맛과 밭의 맛이 다르단다. 아이들에게 딸기밭 구경 가자며 카메라를 들고 네 식구가 간다. 딸기밭 주인과 벗이 되어 얼마의 정담을 나누는 동안 젊은 자녀가 늙은 부모를 공경함이 보기 좋다며 딸기를 차에 실어준다. 집에 와 먹으며 할머니께서 얻은 것이라 고맙다고 인사하는 손주에게 ‘실은 네 엄마 아빠의 효심이 얻은 거란다.’ 
음침한 날씨라 간혹 빗방울은 맞았지만, 마음만은 활짝 갠 봄날처럼 화사하게 웃고 떠든 즐거운 봄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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