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의 시작은 기다림이다
설렘의 시작은 기다림이다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4.03.03 18: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여행의 시작은 설렘이다. 태국의 독특한 불교 문화와 역사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 설렘으로 지루한 줄 몰랐다. 태국의 왓 프라깨우 사원은 우리나라의 사찰과는 다른 화려함으로 이색적이었다. 태국 최초의 왕조를 무너트리고 새로 왕권을 잡은 라마 1세가 만든 사원이다. 왕조의 내전을 겪으며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한 사원은 태국불교의 상징이 되었다. 왕실 사원으로 승려가 거주하지 않고 승려를 위한 학습장소로 사용되었단다.

우리나라도 고려와 조선 시대에 왕실을 위한 원당 사찰이 있었다. 지금은 시대의 변화로 국가가 아닌 불교의 종파에서 관리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 사천왕상이 있듯 왓 프라깨우 사원 입구에 도깨비 형상의 야차들이 있다.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인 프라깨우가 안치된 대법전을 봇(bot)이라 한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세 개가 있다. 중앙 문으로는 왕과 왕비만이 출입할 수 있단다. 사원에 입장하려면 노출이 심한 옷은 삼가야 한다. 반바지, 미니스커트, 민소매를 입은 사람은 입장할 수 없다. 신발을 벗고 프라깨우 불상이 모셔진 대법전에 들어섰다.

본존불이 법주사 불상처럼 크게 생각했는데 높이가 66센티의 작은 불상이다. 불상은 태국 북부 치앙라이에 있는 한 사원의 무너진 탑에서 발견되었단다. 발견 당시 하얀 석고에 싸여 있었단다. 어느 날 탑이 벼락을 맞아 석고가 벗겨져 녹색 빛으로 변했단다. 본존불이 옥색이라 하여 에메랄드 사원이라고 부른단다. 이 작은 에메랄드 불상을 숭배하는 것은 불상이 새로운 왕조의 번영과 왕실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믿음 때문이란다. 그래서 국왕이 직접 3월, 7월, 11월 계절별로 본존불의 의복을 교환하는 행사를 진행한단다.

에메랄드 불상을 통해 왕실의 안녕과 국민의 희로애락을 구원하려는 태국 국왕의 마음을 헤아리며 김동리의 단편소설 `등신불'이 떠올랐다. 만적의 소신공양을 통해 고통과 번뇌로부터 벗어 나는 인간의 강한 의지를 표출한 소설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 작품이었다. 나는 불자가 아니어도 법당에 들어서면 절로 고개가 숙어지고 마음은 숙연해진다. 나를 낮추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에메랄드 불상 앞에서 다시 한번 더 깨닫는다.

대법당에 참배하고 나와 왓 프라깨우 전체를 둘러싼 벽에 그려진 1,900m의 벽화를 감상했다. 흰두교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주요 장면을 그려놓은 것이란다. 우리나라 사찰에도 불교의 교리와 전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부처의 생애를 그려놓은 벽화가 있다. 각기 다른 불교 예술을 느꼈다.

에메랄드 사원의 탑신은 황금색이다. 뾰쪽한 끝부분은 진짜 금이란다. 왕관 모형의 지붕과 옥수수모형의 탑신이 눈길을 끈다. 종 모형의 탑신에는 부처의 사리가 인치되어 있단다. 옥수수모형의 탑신에는 부처의 가슴뼈가 안치되어 있단다. 태국의 사원은 외부가 화려하게 치장되어 햇볕에 반짝거린다.

태국 사원은 우리나라 사찰과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목조 건물로 단아하다. 단청은 화려하나 은은하여 사치스럽지 않다. 우리나라 사찰은 중후하게 잘 늙은 노신사다. 태국의 사원은 벨기에 타일, 중국 도자기, 이탈리아 대리석 등으로 외부와 내부가 사치스럽게 화려하다. 태국의 사원은 겉멋에 우쭐한 중년의 모습이다.

여행의 묘미는 기다림의 끝에서 새로움을 느끼는 설렘이다. 설렘의 시작은 기다림이다. 기다림 속에서 태국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 설렌 시간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