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속의 작은 섬
육지 속의 작은 섬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4.02.2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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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따스한 겨울날 영월 청령포를 향해 길을 나섰다.

차로 두 시간을 달려 청령포 강가에 섰다.

건너다보니 동그란 솔밭의 청령포는 동·남·북 삼 면은 강물이 굽이쳐 흐르고, 서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 육지 속의 작은 섬 같은 형세다. 나룻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어소 앞에 섰다. 담장 밖에 뿌리를 둔 소나무 한 그루가 방문객의 심금을 울린다.

언제든 부름에 응하겠다는 듯이 허리를 굽혀 안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있기 때문이다.

안에는 밀랍 인형의 단종 임금이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시선은 책을 향하지만 글이 마음에 와닿기나 했을까. 왕위를 찬탈당하고 귀양살이하는 열일곱 어린 왕의 처연함이 눈앞에 그려진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소를 나와 단종이 자주 올랐다는 망향탑으로 향한다.

우울한 마음 둘 곳 없을 때면 단종도 도성을 그리워하며 이곳을 올랐던가 보다.

후세 사람들은 한양 쪽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단종을 기억하며 이곳을 일러 망향탑이라고 이름 지었다. 슬픔 속의 단종을 달래는 심정으로 망향탑을 바라보다 관음송으로 걸음을 옮긴다.

관음송 그루터기에 앉아 그리움과 막막함을 달래는 단종의 처지를 헤아려본다.

왕후와 생이별하고 당도한 이곳은 충신마저 없는 유배지가 아니던가. 말 한마디 건넬 이 없는 그 막막함에랴. 그럴 때 곁에 있어 준 소나무. 그 눈물 지켜봐 주고 그 독백 들어준 소나무마저 없었다면 깊은 외로움을 어떻게 다 감당했을까.

방문객들이 청령포를 한 바퀴 돌고 떠나고 있지만, 나는 북쪽의 강가를 향해 걸었다.

물길이 굽이쳐 흐르는 여울목마다 습지와 모래톱이 쌓였고, 한참을 걸어가자 자갈과 돌멩이가 끝없이 펼쳐져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강가에 앉아 단종의 아픔을 되새겨보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지어미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 강가에 나와 시름을 달래지 않았을까.

이 강물은 생육신의 한 사람 원호의 충절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강줄기를 따라 오르면 문종 때 집현전 대학자를 지낸 원호(元昊)가 초막을 짓고 머문 곳이 나온다.

단종이 폐위되자 원호는 병을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영월로 내려왔다. 청령포 상류 작은 초막 옆에 대를 쌓아 `관란'이라 이름 지었다.

거기에서 나뭇잎에 쓴 글과 표주박에 담은 음식을 하류로 흘려보내 단종을 봉양했다고 한다.

단종이 사사되자 3년간 상복을 입고 누워서도 앉아서도 동쪽을 바라보며 두문불출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충절의 마음이 어디 원호 대제학뿐이겠는가.

목숨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홍도, 단종에게 사약을 들고 간 금부도사 왕방연의 마음도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왕방연의 시에서 신하 된 자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고뇌를 짐작할 수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왕명을 거부하면 역적이 되고, 따르자니 고운임 마음에 밟혀 통곡할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의 신하. 600년 전의 슬픈 역사를 지켜본 청령포는 지금도 이어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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