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기오 밤하늘의 별빛
바기오 밤하늘의 별빛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4.02.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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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우리 부부는 두 달 동안 필리핀 바기오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이 층 마루방에서 생활했었다. 신발을 신고 들어와 다니려면 발작을 떼어놓을 적마다 삐거덕삐거덕 소리가 요란이다. 신발을 벗는 건 침대에 누울 때만 벗는다. 텔레비전에서 외국 영화에서 보던 그림을 내가 지금 하고 있다. 너무나 생소해 어색하다. 하지만 어쩌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은 이렇게 할 수밖에.
밤이면 툇마루에 나와 앉아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본다. 별빛이 어찌나 밝은지 밤인데도 파란 하늘에 흰 조각구름이 떠다니는 게 보인다. 작은 별, 큰 별의 깜박임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새파란 천에다 오색실로 수를 놓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자기만의 빛깔로 솜씨를 자랑하느라 영롱한 빛이 작아졌다. 커졌다가 수를 놓는다. 한 올의 실이 뜯어지면 금방이라도 옥구슬이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하여 커다란 천을 깔아 놓고 싶어진다.
또 어찌 보면 반짝이는 별빛이 사랑하는 이와 눈을 마주 보며 주고받는 속삭임 같기도 하다. 무슨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그 소리를 놓칠세라 귀 기울여 들으려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별똥별이 어디론가 흰 꼬리를 길게 남기며 멀고 가까운 곳에서 여행을 떠난다. 별똥별이 가는 목적지가 궁금해 빠른 눈빛으로 따라가 보지만 매번 놓치고 만다. 내 눈이 깜박이는 사이에 어느 별이 여행을 떠나나 긴장하고 있는데, 시샘이나 하듯 포근한 바람이 내 곁으로 와 가볍게 소리 없이 얼굴 위를 맴돌다 지나간다.
밤하늘 별똥별 떨어지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고향 집 마당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다. 어찌나 정겹던지. 밤이 이슥토록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현재 내가 사는 우리나라는 초고속으로 변하고 있어 하늘에 별빛이 사라진 지가 오래다. 아니 이 땅의 불빛이 대낮같이 밝아 별빛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 문화를 따라잡고 싶어 부지런한 걸음을 걸어 보지만, 따라잡을 수가 없다. 날마다 변하는 주변이 생소해 남의 나라에 손님으로 초대받아 온 기분이 들 때도 간간이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머무는 바기오 저 별똥별 떨어지는 모습은 옛 어릴 적 고향에서 보던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화가 깃든다.
여름밤 고향 집 마당에 깔린 멍석 위에 누워 보던 밤하늘과 어쩌면 그리도 같을까? 낯설지 않은 북두칠성과 은하수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머니 곁에 누워 별을 보다 잠이 들면, 흔들어 깨운다. 그럴 때마다 잠든체했었다. 후덥지근한 방 모기장 속보라는 밤바람이 부는 멍석 위가 훨씬 시원했다. 더 좋은 건 잠결에 느끼는 어머니가 부채로 만들어주는 바람이 더 좋아서였다. 나는 밤마다 별빛과 함께 찾아오는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을 추억하며 향수에 젖곤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공해가 너무 심각하다. 하여 밤하늘은 캄캄하다. 필리핀 바기오 밤하늘의 별빛은 생각도 못 한다. 구름이 없는 밤이라 해도 도심에서는 가로등 불빛에 묻혀 별이 보이질 않는다. 설령 보인다 해도 애써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작년 어린이날 우리 가족은 손주들을 위해 대전에 있는 천문대를 찾아가 커다란 둥근 방에 설치해 놓은 의자에 누워 망원경으로 큰곰, 작은 곰 별자리를 보았다. 손주들을 위한 학습이다.
별자리를 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손주를 데리고 숲속 오지 마을 내가 살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그곳에 가서 멍석을 마당에 깔고 나란히 누워 내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손주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궁창의 광명 채인 크고 작은 달과 별들의 반짝이는 빛이 주고받는 속삭임 소리가 들리는가. 귀 기울여 들어보라 하고 싶고, 은하수를 시작으로 북두칠성을 누가 먼저 찾기 시합도 하고 싶다. 그리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시 낭송도 하고 싶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별똥별이 이사 가는 모습도 함께 보고 싶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기세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바기오 밤하늘의 별빛과 함께 찾아와 놀아주던 내 어머니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이 할미처럼 본인 손주들에게 들려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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