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적 불평등
뇌과학적 불평등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4.02.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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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밥 다 먹은 이 여사가 밥 먹는 나를 지켜보며 수다를 떨다가 나에게 물을 떠 오라고 한다. 밥 먹고 있으니 떠다 먹으라고 하니까, 물! 하면서 쳐다본다. 버틴다. 조용하고 나직하게, 물! 버틴다. `긴 말하게 하지 마라, 물!' 궁시렁대며 물을 떠다 준다.

나는 집안에서 약자다. 집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건 악착같이 찾아 시키거나 얻어낸다. 불리한 건 알아도 모른 척한다. 불합리하다. 그럼에도 나는 해주는 편이다.

불평등은 불합리하다. 그럼에도 차별이 우리 집을 지배한다. 이런 차별의 뿌리는 어디일까? 우리의 머리에서 출현하는 차별의식이다.

우리 두뇌에서 먼저 차별이 생기는 곳은 해마이다. 해마는 기억 관장 부위인데, 기억의 형성 과정에서 차별이 생긴다. 눈으로 뭔가를 보면 감각 정보가 몇 단계를 거쳐 해마에 전달되는 데, 이 정보가 해마의 입구(a)와 출구(c)에 동시에 전달이 된다. 해마의 입구로 들어간 정보(a)는 과거로부터 누적된 기억과 더해져서(b가 되어) 출구로 나오는데 이때, b와 c가 비교된다. 이 경우, 해마를 거친 정보(b)와 해마에 직접 들어온 정보(c)의 차이에서 가치가 매겨진다. 이때 두 정보 사이의 차이가 크면 유의미한 정보로 취급되어 두뇌가 후속 조치를 한다. 그 차이가 크지 않으면 신경을 끊는다. 곧 별로 가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가령 어떤 여인의 얼굴을 봤는데 해마를 거쳐서 집사람의 얼굴로 판명이 되면 심드렁해지고 한효주의 얼굴로 판명이 되면 가슴이 뛰고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되는 건 해마의 이런 가치 산출기능 때문이다.

두 번째 가치 차이를 산출하는 부위는 편도체(amygdala)이다. 모든 생물은 목숨을 부지하려면 현재 입력되는 정보의 정체를 순식간에 파악해야 한다. 위험한 정보인데 감당할 수 있으면 싸우고(fight) 감당불가하면 도망간다(run). 도망가야 한다면 몸에 경고신호를 보내는데 그게 공포의 감정이다. 생존에 도움이 되면 호감이 생긴다. 이렇게 편도체에서는 좋고-싫고(好惡)로 가치를 매긴다. 편도체의 정서 표출 기능은 본능 차원에서 가치가 매겨진다는 걸 알려준다.

세 번째 가치 차이는 전전두엽의 가장 앞부위에서 출현한다. 최전방 전전두엽피질은 앞의 영역에서 처리된 정보를 최종 처리해서 행위로 옮긴다. 취합된 각종 정보를 두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이때, 순위 결정 기준은 실현가능성이다. 나의 역량, 타인과의 관계, 사회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가능한 건 높게 평가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가치하게 여겨 없던 일로 치부한다. 우리가 대통령 꿈을 갖고 있다가 나이가 들면서 그걸 의미 없게 여기는 건 이 때문이다.

집사람은 나에게 뭔가 시킬 때, 최전방 전전두엽에서 모든 걸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곧 나를 만만한 인간으로 본다. 그러니 아무 거나 다 시킨다. 편도체에서도 나에 대해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도구로서 적합한 호감을 갖고 있다. 가장 심각한 건 해마에서의 나에 대한 판단인데 나는 전혀 자극이 되지 않는 인간이다. 곧 있으나마나한 인간이다. 다만 자기의 귀찮음을 해소해주는 효용가치는 인정한다.

나는 전혀 위험하지 않고 모든 얘기를 해도 다 들어줄 것 같고, 심드렁하지만 어느 정도 필요한 인간으로 취급되고 있다. 사실 이런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 가족이다. 되짚어 보면 지금 집사람과 나의 관계는 젊은 시절 나와 집사람 관계가 역전된 것일 뿐이다. 집사람에게 명백히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으면서도 기분이 별로 안 나쁜 건 이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동료 시민이라고 호칭하는 건 기분이 아주 안 좋다. 나는 그 사람을 평등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자신을 보통사람이라고 포장하는 것 같아 더욱 거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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