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향기를 품은 목련 꽃차
태고의 향기를 품은 목련 꽃차
  • 이연 꽃차소물리에
  • 승인 2024.02.1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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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이연 꽃차소물리에
이연 꽃차소물리에

 

계절이 봄의 문턱을 넘었다. 찬바람이 제법 매섭지만 바람 어딘가에는 모두를 들뜨게 하는 따듯한 봄의 온기가 실려 오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베란다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도 날마다 조금씩 따스함이 짙어지고 있다.

요즘 나는 목련꽃과 씨름을 하는 중이다. 꽃이 피는 시기도 아닌데 웬 목련꽃과 씨름을 하고 있냐고 하겠지만 사실이다. 얼마 전부터 보타니컬 아트를 배우는 중인데 스케치를 배우고 난 다음 첫 작품으로 목련꽃을 색칠하고 있다.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것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자신 있다고 자부하던 터에 그깟 색연필로 색칠하는 것쯤은 쉽게 터득하고 배우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분홍도 다 같은 분홍이 아니요, 초록뿐만 아니라 갈색도 다 같은 갈색이 아니었다. 꽃잎 한 장 색을 입히는데도 수십 번 수백 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관찰하고 결 따라 색을 입혀야 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꽃이 있고 선호도가 다르듯 나는 그다지 목련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목련이 질 때 모습이었다.

겨우내 그 어느 꽃보다 많이 애쓰며 꽃망울을 키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애쓴 흔적이 어느 날 한순간 스러지는 느낌이랄까.

또 우아하고 고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하얀 꽃잎이 바닥에 뒹굴며 누렇게 변해 사람들 발길에 차이는 게 보기 싫었다.

인내심 없는 꽃으로는 목련이 최고일 거로 생각했다. 아마 내가 꽃을 좋아하는 기준은 마지막 지는 모습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 기준은 눈으로만 보이는 것에만 잣대를 들여댔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봄 목련꽃으로 차를 덖으며 내 기준이 편견이었음을 알았다. 내가 생각한 인내심도 없고 쓰임도 없을 거로 생각했던 목련 나무와 꽃에는 미처 알지 못한 이야기들과 고대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오랜 옛날 공룡이 살았던 백악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식물 중 하나가 목련 나무라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심지어 벌과 나비도 없었던 시기였다. 하여 꽃에는 꿀샘이 발달하지 못했고 목련꽃 향기가 유난히 진하고 향기가 멀리 퍼지는 이유는 딱정벌레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다. 백악기 때부터라 살아온 나무였다니 이보다 인내심 강하고 태고의 향기를 품고 있는 나무가 얼마나 될까.

목련꽃은 생약명으로 신이화(辛夷花)라고 불린다.

성질은 따듯하고 맛은 매우나 독은 없다. 호흡기 질환이 불청객으로 많이 찾아오는 환절기에 마시면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대표적인 차가 목련 꽃차다.

환절기만 되면 꼭 고통스러운 비염을 함께 맞이하는 사람들은 목련 꽃차를 즐겨 마시면 한결 수월하게 환절기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목련 꽃차에는 피부에 좋은 성분들이 있어 피부미인에 한발 다가갈 수도 있는 차다.

차를 덖으며, 차를 우리며, 늘 드는 의문은 얼마나 마셔야 몸에 좋을까. 혹은 얼마나 많이 마시면 부작용이 일어날까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을 것 같다. 몸에 좋다고 주구장창 마신다면 아무리 몸에 좋은들 마냥 좋을까.

지난봄에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 덖어놓은 차를 우렸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며 목련꽃 향기가 그윽하게 퍼진다. 그동안 인내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꽃이라고, 꽃잎이 떨어질 때 왜 그리 흉하냐고, 생각한 마음을 내려놓으며 다시 하얀 화폭을 마주한다.

아래쪽 가지에 자목련이 한 송이 피어 나고 가지 끝에는 다른 송이가 꽃봉오리를 부풀리는 중이다. 초보자의 그림으로 피어난 목련임에도 고귀함이 흐르고 있는 듯 느껴지는 것은 내가 지금 향기로운 차를 마시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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