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이의 변명
어느 아이의 변명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4.02.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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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어느 날 민호의 머리가 터졌다. 피가 흘렀다.

석이가 민호에게 짱돌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민호는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 울음을 터뜨렸다.

석이와 민호는 동갑내기 아이들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들은 같은 학교 같은 학급 같은 골목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보며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민호는 어디서나 석이를 볼 때 마다 늘 괴롭혔다. 이유는 분명치 않았다. 단지 민호는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거나 온갖 고통을 주면서 모욕감을 주었다.

아이들은 민호에게 비위를 맞추거나 거슬리지 않으려고 눈치를 엿보았다. 그 날도 사건의 발단은 민호에게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민호가 석이에게 학교에 두고 온 물건을 갖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석이가 거부하며 말을 듣지 않자 민호는 석이를 마구 때렸던 것이었다.

석이는 덩치로 보나 힘으로 보나 키가 큰 민호를 감히 대적할 힘이 없었다. 석이는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작고 왜소하며 힘없는 약한 아이였다.

석이는 민호에게 왜 때리느냐고 울면서 항변을 했다. 맞는 것이 아파서가 아니라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맞아야 하는 약자의 억울함 같은 호소가 석이를 더 아프게 했다.

민호는 석이를 제 멋대로 때리고 난 후 돌아섰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모를 꿈틀거리는 슬픔과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순간 쓰러져 있던 석이는 벌떡 일어나 짱돌 하나를 집어 민호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민호의 머리에서 피가 나고 석이는 당황한 듯 쏜살같이 달아났다. 민호의 울음이 처절했다.

석이의 돌팔매질 소문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날아갔다. 사방에서 석이에게 나쁜 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억울함에 대한 동정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민호에 대한 잘못은 모두 묻혀 버렸다. 아주 꽤 오래 전 일이지만 시절이 바뀌어도 지금이 그때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 꺼내 보았다. 다만 그 시절에는 아이들의 폭력문제를 단순하게 취급하면서 별로 심각성이나 관심을 두지 않을 때였다.

석이는 언제나 외톨이였다. 아이들도 덩달아 민호를 따라 석이를 왕따를 시켰다. 그것이 설령 석이와 놀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간 석이와 같은 아이로 취급당할까하는 경계가 숨어있었다.

석이는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석이의 어머니는 품삯으로 하루를 겨우겨우 살아갔다. 게다가 석이의 어머니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야하는 두 모자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 외로웠다. 더구나 석이가 민호에게 돌을 던졌을 때 그 누구도 두 모자의 진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호의 부모와 아이들의 부모는 자신들의 아이가 석이에게 한 짓은 생각지도 않고 돌을 던진 석이만 나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석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만 했다. 아마 석이의 눈물은 억울함 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후 석이의 어머니는 석이를 혼내기는 커녕 석이를 타이르며 다독였다. 그러나 석이 어머니의 말 없는 가슴 그 너머로 눈시울이 붉어져 갔다. 그렇지만 석이의 행동은 이유가 어찌됐든 그릇된 것이었다. 비록 억울함이 호소될 수 있지만 돌을 던지는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석이의 슬픔과 분노는 외면당했지만 침묵은 외쳤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석이네는 그 골목을 떠났다. 그리고 그 뒤로 그를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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