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길타령
나그네 길타령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4.02.0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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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세상에는 숱한 길이 있습니다.

넓은 길 좁은 길이 있는가 하면 곧게 뻗은 길과 꼬불꼬불한 길이 있고, 평탄한 길 울퉁불퉁한 길이 있는가 하면, 시끌벅적한 길과 호젓한 길이 있고,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는가 하면 험한 가시밭길과 위태한 벼랑길이 있습니다.

또 다리와 터널 길도 있고, 배가 오가는 바닷길(海路)과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길(空路)도 있습니다.

그 많은 길들을 오가며 예까지 왔습니다.

외길을 걷다가 갈림길을 만나 헤매기도 했고, 길이 막혀 되돌아오기도 했고, 지름길이 있는 줄 모르고 에움길을 둘러서 가기도 했고, 편한 지름길을 걸으려다 낭패를 보기도 했습니다.

고생길이라 여겼는데 지나고 보니 꽃길이었던, 꽃길이라 여겼는데 가고 보니 고생길이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모두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내가 오갔던 길이었습니다.

영욕의 길이고, 추억서린 길이지만 종당에는 흙으로 돌아갈 길이었습니다.

70여년의 나그네살이를 되돌아보니 인생이란 제 갈 길을 가는 거였고, 제 갈 길을 내는 거였습니다.

제 갈 길을 내려고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번민도 하고 사랑도 했습니다.

사내로 태어나 애써 사나이의 길을 걸으려했고, 공직의 길을 걸으며 나름 선한 공복이고자 했으며, 시인의 길을 열어 시를 빚고 개똥철학도 하고, 신앙의 길로 들어서서 속죄와 통회를 거듭하고 있으니 축복받은 나그네라 할 만합니다.

각설하고 인생살이에는 크게 세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교통수단으로 쓰임 받는 선형의 길과 방도(方途)를 나타내는 길 그리고 행위의 규범(道)으로서의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교통수단으로서의 길은 사람과 동물들이 드나드는 보행 길과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 등 문명의 이기들이 드나드는 도로와 철로 그리고 해로와 공로를 이릅니다.

방도를 나타내는 길은 `무슨 길이 없을까', `손쓸 길이 없어'라는 말처럼 어떤 일에 취해야 할 수단이나 방법을 의미하는 길입니다.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길은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할 때 로(路)나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는 할 때 길이 의미하듯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심성이나 행위를 이릅니다.

서양인들은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며 세상은 무대로 사람은 배우로 인식하고, 동양인들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며 세상은 여관으로 사람은 나그네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가/ ···· /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 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라는 유행가 가사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됩니다.

아무튼 길은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우리 민족사와 함께한 원초적 어휘의 하나로서 의식주(衣食住)를 연결하는 통로로 기능한 공간적 선형이자 정신적 지향입니다.

한자에는 길을 뜻하는 글자가 10여 자가 있는데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이는 글자는 경(徑)과 도(道)와 로(路) 세 글자입니다. 골목길 같은 작은 길을 경이라 하고, 중간 크기의 일반도로를 도라 하며, 고속도로 같은 큰길을 로라 부릅니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모든 인간의 일생은 자기에게 도달하는 길, 자기실현의 길이다'라 했듯이 인생살이에 중요한 길은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길입니다. 니체가 말했던가요.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각기 저마다의 길을 가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요즘 맨발걷기를 하면서 `걷기는 세상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자신의 마음속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는 앙리 미쇼의 말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함께 하면 길이 된다는 말로 길타령을 마칩니다. 지금 걷는 길이 꽃길이라 여기며.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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