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역할
뒤바뀐 역할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4.02.0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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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가까운 이웃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찾아왔다.

이유인즉 시어머님의 나이가 올해 백세이신데 별 탈 없다가 치매가 들었다는 얘기를 전하고 있다.

며칠 전 몰래 집을 나가서는 넘어져서 온 몸이 부서지고 지금은 중환자실에 계신다나.

가족들 모두 초 긴장상태로 들어갔다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함께 사는 며느리의 보살핌 때문에 그분의 일생이 편안해 보이던 터였다.

다시 여러 날이 지나갔다. 후에 전해들은 이야기는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며 울먹이고 있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보듬어 주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던 차, 오히려 상대방이 잔잔한 심정으로 전해온다.

오랫동안 병상에 머무르지 않고 떠나신 것과 백수를 채우신 걸음이 축복이었다며 주변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는 얘기였다.

또 하나 사고를 당하기 전 잠간 정신이 밝았을 때는 당신의 옷가지들을 정리하면서 꼬깃꼬깃 쌈지에 묶어둔 돈과 통장, 도장까지도 며느리에게 주셨다며 눈물짓고 있었다.

내 눈은 한사람이 아닌 고부간의 모습을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그리게 되었다.

요즘 들어 대부분 노쇠하고 병약해지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떠나는 일이 흔하지 않던가.

예전에 그 분은 얘기 중에서도 시어머니를 절대 시설로는 보내지 않겠다며 다짐을 보이고는 했었다. 그래서 속정 깊은 그분의 눈망울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만 같다.

그날 저녁 남편과 TV를 보다가 그만 빠져들었다.

시설이 좋은 양로원에서부터 요양병원, 요양원, 이렇게 각 사람의 처지에 따라 입소해 있는 형태를 보여주는 다큐였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인터뷰들이 머잖아 내가 겪어야 할 일인 양 지나칠 수가 없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대 부분의 노인이 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슴이 아프다기보다는 사람의 일생 속에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가 가깝게 다가온다는 것에서 과연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하고 서성거려졌다. 다큐가 전해주는 묵직한 내용들이 내내 가슴을 휘 젖게 해 놓았다.

우리 부부 또한 역할이 바뀌어버리는 삶의 길을 가는 중이다.

서슬 퍼렇고 쌩쌩한 나이 만큼에는 어디를 가든 주도하에 자식들이 동반했었다.

이제는 아니다. 집안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부터 병원 드나드는 일까지 자식들과 상의하면서 살아간다.

정말 역할이 바뀌고 있는 순간이라고 해야 하나….

삶의 울타리가 자식들인 양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해도 그릇된 판단은 아니리라.

절실하게 바뀐 역할들이 주변에 무수하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세대 간의 갈등과 노인문제라고 여긴다.

부모는 아이가 되고 아이는 성장해서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서 주어진 역할을 감당해가는 때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만고의 세상이치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한 내리사랑, 세대의 격차를 순리로 아우르는 표현쯤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제 그 사랑이 서글픈 형태로 바뀌어 가지 말고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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