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보고 봄을 봄
겨울을 보고 봄을 봄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4.02.0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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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잔뜩 찌푸린 날이다. 오전엔 제법 비를 쏟았는데 오후 들어서 비가 멈췄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분위기는 스산하다.

지난 여름 솜사탕만한 꽃을 피웠던 수국이 고개를 숙였다. 커다란 꽃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지 중간 부분이 꺾여있다. 꺾인 부분의 위쪽은 모조리 말라버렸다. 손가락 굵기 정도의 가지와 화려했던 꽃의 색은 말라비틀어진 줄기의 색과 같다. 수분을 모조지 잃고 말라비틀어진 날짐승의 날개를 뭉쳐놓은 듯하다. 날짐승의 날개 무덤 같다. 삭풍에 안간힘을 다하다 무참히 꺾여버린 패잔병이다.

어쩌면 지난 가을부터 순을 올리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낙엽에 덮여 알지 못했을 뿐이다. 바람이 제법 불었다. 쌓였던 낙엽이 제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낙엽을 떠나보낸 상사화 싹은 생기를 잃었다. 예년 기온과 달라 때를 파악 못 하고, 물을 잔뜩 올렸었건만 추위에 얼어버렸다.

한낮 기온이 평년의 기온을 찾았다. 얼었던 싹의 윗부분이 녹으며 고개를 숙였다. 평년 기온보다 웃도는 날이 이어졌다. 싹의 윗부분이 말라비틀어졌다. 바람에 제쳐진 낙엽을 쓸어 다시 덮어 준들 바람이 바로 훼방한다. 조금이라도 지대가 높다 치면 낙엽이 온전히 제 자리에 있질 못한다. 구석지고 낮은 곳으로 몰렸다. 겨울을 지나는 내내 쌓여만 갔다. 한편으로 쌓인 낙엽은 말라비틀어진 상사화 싹이 덮고 있던 이불이었다.

비가 내린다. 올겨울은 유독 흐린날이 많은 듯 하다. 예전의 비와 다른 느낌이다. 스산하기는 매한가지인데 훈풍의 느낌이 든다.

낙엽이 들뜬 모습이다. 무척이나 많이 쌓여 있는 낙엽이 부풀어 오른 듯하다. 다른 곳으로부터 더해진 낙엽일 리 없는데 조심스레 들춰본다. 곰삭은 낙엽 속에 상사화의 싹이다. 심지 않았는데 싹이 올라와 있다. 낙엽을 잃은 상사화 싹은 아직 생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낙엽이 쌓인 곳에 싹은 금세라도 줄기를 올릴 기세다. 옮겨 심지 않았는데 심어진 곳의 생육조건이 맞지 않아 스스로 이사를 한 것도 아니다. 조건이 맞는 곳을 찾아 번식한 것이다. 생존해야 함에 개체수를 늘렸다.

꺾인 부분 바로 아래 마디에 눈이 달렸다. 회백색의 명확하지 않은 색을 갖고 있지만 싹을 틔울 눈이다. 눈송이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가지는 꽃의 흔적과 함께 시들었지만, 죽음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생명은 시간은 이어내었다. 땅과 맞닿은 부분에 눈이 모였다. 자색의 눈,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가지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눈이긴 하나, 경이로운 기적과도 같은 버팀이자 꿈이다. 꿈을 한시도 꾸지 않은 적이 없다. 안된다고 안될 수도 있다는 관점은 한 번도 없었기에 한계의 시간이 버티며 살을 찌우고 있다.

삶을 설계하고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생명체는 오직 사람이라고 하지만 주어진 필연적 상황을 이어 나가려 안간힘을 다하는 건 어느 생명체나 매한가지인 듯하다. 어쩌면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생을 정리하는 일은 없지 않은가? 힘들다고 보채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다. 주저하기는 하나 멈춤은 없다. 혹독한 겨울이지만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끊임없이 물을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을 뿐이다.

그 어떤 극한의 상황도 생을 마칠 수 있다는 위기이기에 그 모든 과정은 꽃을 피운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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