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안에 또 하나의 공간
공간 안에 또 하나의 공간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4.02.01 1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십수 년을 여섯 식구가 복작거리며 살던 공간에 우리 부부만 덩그러니 남았다. 너무나 휑하여 거실에 커다란 수족관을 마련해 놓고 몸집이 작은 구피를 분양받았다.

수족관에 비해 구피의 몸집이 너무 작아 쓸쓸해 보인다. 물속에서 자라는 난초처럼 생긴 풀 한 포기를 사다 심었다. 쭉 뻗은 곡선이 너무나 보기가 좋다.

구피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조그만 입술로 파란 풀잎에 뽀뽀를 시도 때도 없이한다.

물속에서 하늘거리는 파란 잎은 여인의 머릿결을 닮았다. 한 공간에서 공유하며 사는 모습이 보기에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가느다란 파란 잎은 여러 색깔을 반사하는 구피들과 환상의 하모니를 이룬다. 작고 빨강 부채꼴 꼬리로 물을 가르며 수컷이 암컷을 따라다니면 좋으면서도 잎 사이로 몸을 숨긴다. 꼭 청춘 남녀가 숲속에서 나무 사이를 오가며 잡힐 듯 말듯 사랑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 녀석들도 `그대가 나를 필요로하니 내 어찌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라며 짝짓기를 했는지 눈과 꼬리만 달린 아기를 낳아 가족을 늘린다.

그러다가도 돌아서 주둥이로 서로를 쪼고는 제 갈 길을 간다. 수족관을 한 바퀴 돌고 와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금세 짝꿍이 된다.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가족이란 이유로 한 공간에서 그대가 나고 내가 그대라며 절절히 사랑한다고 고백하다가도 의견이 맞지 않으면 작은 신음에도 금세 토라져 금방이라도 숨이 꼴깍 넘어갈 고통을 호소하며 가시 돋친 말로 서로를 찌른다.

누구라도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 가슴에 박힌 가시를 뽑아주지 않으면 깊은 상처에서는 빨강 피를 철철 흘림 같이 그렇게 아옹다옹 사랑도 키우고 미움도 키워가며 사랑의 열매로 자녀를 낳아 원만한 가정을 이루며 한 공간에서 살지.

젊어서의 부부란 주머니 쌈짓돈 같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수족관 창을 더듬이로 청소하는 다슬기의 사는 모습이 그렇게 보인다.

다슬기는 홀로 생활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짝지기를 하면 헤어질 줄을 모른다.

가녀린 풀잎을 기어 올라갔다가 몸을 날려 공중 묘기를 부린다. 몸무게가 있음에도 풀잎이 꺾이지 않음은 물의 중력에 의해 휘었다가 다슬기가 떨어지면 용수철처럼 제자리로 간다.

풀잎도 싫어하는 내색 없이 조용히 꽃, 바람을 날리며 물 위로 오름은 다슬기가 찾아와 더듬이로 맑게 청소해 주며 놀아줌이 싫지 않은가 보다.

한 포기를 사다 심었는데 구피가 먹다 남은 음식과 배설물이 지층으로 쌓이니 영양분이 되어 마디에서 또 다른 잎이 돋아나 수족관이 풍성해 보기에 좋다.

내 공간에 또 하나의 공간 안에 사는 종이 다른 저들은 한 가족으로 맺어진 인연이 너무나 소중한 관계인지라 언제 어디서 살다가 왔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구피는 이렇듯 예쁘게 키워놓고 그 그늘에서 쉼을 누리는 저들의 하루하루의 삶은 참으로 경이롭다.

수족관 안의 서로 다른 생명을 바라보노라면 소중한 생명이 서로 눈빛으로 피부로 대화하며 오솔길 같은 좁은 풀포기 사이를 자유자재로 날갯짓하며 내가 그대인지 그대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공유하며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삶의 용기를 얻을뿐더러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 부부 역시 반백 년을 넘게 쌓아온 세월을 한 공간 안에서 그대가 있어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며 살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바라보는 곳도 같아 서로의 감정이 하나의 빛깔로 변해 있음이 보인다. 이제는 서로를 보살핌이 당연한 게 아니라 은혜라며 저들처럼 서로가 고마워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