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그 찰나
1초, 그 찰나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4.01.3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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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시간은 쫓기듯 잰걸음을 친다. 내 생각의 분침과 초침이 모두 그이에게 향해 있다. 작년부터 맞추어 놓은 시계다. 언제쯤 나에게로 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일은 내일에 맡기기로 한다. 또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볼 일이다.

1초의 찰나는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꽤 결정적일 때가 많다. 여러 사람의 생업을 좌우하는 경매사나 생방송의 절묘한 타이밍이 된다. 수술실에서는 절박한 생과 사의 기로가 된다. 장기이식의 골든타임을 반드시 사수하여야 기증자의 희생이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숭고한 시간이기도 하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단 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린다. 수영에서 계영 경기는 앞 선수가 수영하고 들어와 터치패드에 손을 찍으면 그다음 선수가 릴레이를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기록을 위해 시간을 어떻게든 줄여야 하는 시합이다. 뒷사람의 팔이 터치패드에 닿기 위해 팔을 뻗을 때 다음 선수는 그걸 믿고 바로 물속으로 뛰어든다고 한다.

1초가 더 빠르냐 아니냐에 따라 메달의 종류가 달라지는 잔혹한 세계에서는 세 명이 0.3초만 아껴도 1초를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 엄청나게 큰 차이다. 이를 위해 수없이 훈련을 해오며 준비를 했을 선수들이 큰 산처럼 엄청나 보인다.

꿀벌은 몸통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아서 원래는 날 수 없는 몸의 구조라고 한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고, 당연히 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날갯짓을 열심히 함으로써 정말로 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1초 동안에 살기 위한 200번의 날갯짓은 치열한 몸부림이다.

1초 만에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있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힘내라는 말은 용기가 되살아나고 축하한다고 말하는 순간 기쁨은 부풀어 올라 커진다.

내가 들은 최고의 말은 응원한다는 말이다. 이 한마디는 긴 시간 벅찬 말이다. 어떤 삶일지라도 나를 믿는다는 것이므로 든든하다.

1초를 따지는 시간의 밀도는 나와 거리가 멀다. 요즘은 헐렁해지고 느슨한 하루를 산다.

내 주위에는 이 나이에도 계속 배움을 이어가고 몇 개의 강좌를 듣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어를 공부하고 한 달에 글 4편을 신문에 기고한다. 이렇게 시간에 쫓겨 촘촘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아직도 식지 않는 열정은 어디에서 온 건지. 무엇일까. 아마도 거기서 자신의 행복을 찾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끝나지 않은 투병의 길이다. 아무리 내 시간이 그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도 1초는 소중하다. 현재는 기쁨, 슬픔, 아픔의 조각들로 이어져 찬란해진 하루다. 그이의 아픔으로 노심초사하느라 어찌 지나갔는지 모를 한 해다. 나에게 1초는 행. 불행을 넘나드는 경계선. 선로를 결정하는 선택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저마다 행복은 다르게 찾아온다.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른다. 둘이 찻잔을 마주하고 바라본 풍경은 그대로 그림 한 폭이 된다. 남들보다 염염한 시간이 보내온 눈부신 볕살, 바람 한 자락이 달갑다. 여유로 충만해진 나를 만나는 일은 쏠쏠한 감동이 된다.

지금의 1초는 우리의 추억이 쌓이는 시간. 한낮의 한량놀음이 마냥 즐거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이들의 1초. 서로 다른 1초다.

이 행복을 의심하지 않는다. 커피 향이 퍼지며 달보드레한 시간. 소소한 오늘이 있어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걸어가는 내일을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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