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엄한 엄나무
이름도 엄한 엄나무
  • 우래제 전 충북 중등교사
  • 승인 2024.01.2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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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래제 전 충북 중등교사
우래제 전 충북 중등교사

 

귀농도 아니고 귀향도 아닌 상태에서 어정쩡한 농부가 고향마을 척박한 땅에 마땅히 심을 만한 작물이 없어서 두릅나무와 음나무를 여기저기 심었다.

이렇게 심어둔 두릅나무 순이 먹음직스럽게 자라 거의 다 따 낼 즈음 음나무 순이 따기 좋을 만큼 자란다.

그런데 이놈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 가시를 만들었을까?

보통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는 일종의 방어수단이다.

특히 독이 없어 달리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식물들의 생존전략이다.

연하고 특유의 향과 맛을 내는 음나무, 두릅나무는 물론이고, 어릴 적 배고플 때 껍질을 벗겨 내고 먹던 찔레나무 순은 초식동물들이 좋아하는 식물이다.

아까시나무도 역시 초식 동물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그런데 엄나무나 두릅나무 아까시나무가 굵어지고 키가 커지면 높은 곳의 가지에는 가시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순을 따먹는 초식동물이 많지 않기에 가시를 만드는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식물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오래된 음나무 가지는 가시가 작고 듬성듬성 나 있는데 자주 잘라 준 음나무는 가시가 크고 총총 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음나무는 두릅나뭇과의 식물로 가시가 엄(嚴)하게 생겨서 엄나무라고도 한다.

엄한 가시 때문에 귀신도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대문 근처에 심거나 가지를 잘라 문설주에 매달아 놓기도 했던 나무다.

이렇게 벽사邪) 나무(귀신 물리치는 나무)로 생각해 옛 사람들이 마을에 심어 놓은 음나무는 당산나무로 보호받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마을 입구에 족히 백여 년은 넘을 음나무는 도로포장 덕에 시들시들 죽어 가다가 마침내 잘려지고 아름드리 그루터기만 옛사람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음나무 새순을 참두릅에 못 미쳐 개두릅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부드럽고 쌉쌀한 맛이 좋아 참두릅 순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나무껍질에 여러 가지 약효가 있어 한방에서 약용으로 쓰고 있다. 가지를 잘라 엄나무백숙을 만들기도 한다.

새순이 나오기 전 겨울에 잘라 말린 가지로 끓인 백숙이 가장 맛있다는 시골 친구의 말은 들었지만 올해는 미처 준비를 못했다.

순을 따느라 자른 가지라도 한 줌 말려 두었다가 귀한 사람들 찾아오면 끓여 먹어야겠다. 백숙 한 그릇 먹고 싶다.

참두릅과 엄나무 순 수확 때면 손 여기저기에 가시가 걸린다.

큰 가시야 수시로 빼내지만 잔가시는 귀찮기도 하고 잘 보이지도 않아 그냥 버티고 있다가 수확이 끝나면 빛 좋은 날 돋보기 쓰고 가시를 빼낸다.

큰 돈벌이도 아닌데 왜 사서 고생일까? 가시 빼낼 능력이 없으면 그마저도 그만둬야 되겠지?

`가시로 치렁치렁 장식하여// 봄이면 / 우산 같은 잎새 돋고 //여름이면/매미소리 불러들여/한바탕 풍류를 즐기다가 /보양식인 엄나무 삼계탕으로 둔갑한 후 //가을이면/코끼리 귀 같은 이파릴 흔들어대고 //겨울이면/촘촘히 박힌 가시 /엄부자모처럼 진정 시킨 후 /칭칭 묶여 팔도유람 그만이네'

(엄나무·반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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