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바오밥나무
거꾸로 바오밥나무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4.01.22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상상하며 그려보던 모습이 아니었다. T.V에서 보았을 때나 사진으로 보았을 때도 나무는 저리 평범해 보이지 않았었다. 무슨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

바오밥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지금도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마어마한 크기와 굵은 나무 둘레, 거기에 하늘을 향해 자라는 뿌리, 누군가의 설명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거꾸로 자라는 나무라고 믿었을 터였다.

내가 바오밥나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사춘기 무렵으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를 읽게 되면서였다.

세 그루의 바오밥나무가 엄청난 뿌리로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소행성 B-612호를 칭칭 감고 있었다. 삽화를 볼 때만 해도 엄청난 크기로 자라는 나무일 거라고만 추측했었다. 그때 정작 내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나무의 생김새가 아니라 이름이었다. `바오밥나무' 라니, 이 얼마나 신비한 이름인가. 사춘기 소녀의 감성이었을까. 생경한 나무 이름이 멋지게만 느껴져 훗날 어른이 되면 나무를 만나러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리라 꿈을 꾸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바오밥나무를 자연다큐로 다시 보던 날 이번에는 나무의 이름이 아닌 생김새에 놀랐다.

어린 왕자의 별 소행성 B-612호에서 지구로 날아와 뿌리와 줄기가 거꾸로 박힌 듯한 나무 모양새는 바라볼수록 기이했다. 신이 실수로 나무를 거꾸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더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실제로 나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더 간절했지만 쉽게 아프리카에 여행 갈 처지도 못 되는지라 인터넷에 떠도는 기이하고 신비한 사진들로 만족해야만 했다.

세종 수목원에 바오밥나무가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나무를 직접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설레었겠는가. 그런데 온실 어디에도 뿌리를 거꾸로 한 듯한 모습의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혹시 나무 이름을 잘못 표기해 놓은 것은 아닐까. 알림 표지판을 보는데 거기에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나무의 사진과 설명이 있었다. 분명 바오밥나무였다. 나무의 모습을 보며 당황한 사람이 나 말고도 더러 있었나 보다. 사진을 함께 붙여놓고 세심하게 설명해놓은 듯 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명색이 바오밥나무 아니던가. 아쉬움에 나무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니 제법 굵은 나무 몸통과 우듬지에 매달린 누런 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계절 따듯한 온실에서 살아 잎이 푸르고 싱그러울 법도 한데 밖의 계절이 겨울인 줄 아는 걸까. 아니면 머나먼 고향을 떠난 그리움에 생기를 잃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도 저도 어쩌면 나무의 생태를 모르는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도 있겠다.

얼마 전 여행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마다가스카르였다. 내가 그리도 보고 싶어 했던 독특한 생김새의 바오밥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수목원에서 아쉬웠던 마음이 떠올라 휴대전화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나무를 열심히 찍어 저장했다.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을 살아간다는 나무. 엄청난 둘레의 나무 몸통에는 많은 양의 물을 저장하고 있어 물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고 한다. 또 잎이 아닌 줄기로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니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나무의 생존방식에 또 한 번 놀란다. 분명 건조한 열대지방에서 오랜 세월 살아남으려니 그리 진화했을 것이다. 바오밥나무의 기이하고 신비한 생김새는 수백, 수천 년을 척박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한 나무의 길고 긴 여정의 흔적이리라. 거꾸로 바오밥나무, 나는 또 꿈을 꾸기 시작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