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시간
잠든 시간
  • 신찬인 전 충북청소년문화진흥원장
  • 승인 2024.01.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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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신찬인 전 충북청소년문화진흥원장
신찬인 전 충북청소년문화진흥원장

 

 갑자기 승용차의 유리에 뿌옇게 성에가 끼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주변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언제 충돌할지 모른다. 갓길에 차를 세울 수도 없고, 계속 앞으로 나갈 수도 없다. 금방 다른 차와 부딪힐 거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겨울이 되면 실제로 가끔 겪는 일이다. 지하 주차장에 있다가 충분히 예열하지 않고 주행하다 보면, 갑작스러운 온도 차로 유리에 습기가 끼곤 했다. 그제야 히터를 틀고 유리창을 열어보지만, 습기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나는 잠이 많은 편이다. 저녁 9시가 넘으면 꾸벅꾸벅 졸다가 잠들곤 한다. 지금도 하루 8시간 정도 자고, 여건이 되면 점심 먹고 30분 정도 낮잠을 즐긴다. 그러다 보니 깊이 잠들지 못하고 선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꿈을 자주 꾼다.
가끔은 가위에 눌리곤 한다. 젊었을 때는 종종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꾸고는 했다. 그럴 때면 ‘나 군대에 갔다 왔어요’라고 소리쳐 보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자주 꾸던 꿈이 시험 보는 날이다. 공부는 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오늘이 시험 보는 날이라고 한다. 분명 며칠 더 남았었는데 말이다. 그때의 답답함과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다 잠에서 깨면 ‘어휴 살았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요즘은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고 쫓아오는데,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곤 한다. 그야말로 오금이 저린 거다.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해 뛰어보지만, 그냥 그 자리에서 허우적거리곤 한다.
그렇다고 악몽만 꾸는 건 아니다. 가끔은 보고 싶었던 사람을 보기도 하고, 노을 지는 호숫가에 앉아 붉게 물들어가는 수면을 바라보면서 황홀경에 빠져들 때도 있다. 하지만 기분 좋은 꿈보다는 가위눌리는 꿈을 더 많이 꾸는 것 같다. 꿈은 늘 절박했던 순간들을 트라우마로 남겨두었다가 현실처럼 재생하곤 한다.
예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늘 잠만 주무시곤 하셨다. 기력이 없고 거동을 못 하시니, 가 수면의 상태가 계속되는 거다. 그러다 눈을 뜨시면 악몽을 꾸었다며 고통스러워하셨다.
정녕 그 고통스러운 악몽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원하는 꿈을 꾸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고통스러운 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잠든 시간을 무용에서 유용으로 바꿀 수는 없는 걸까?
어느 작가의 말처럼 잠 그리고 꿈이, 숨 가쁘게 이어지는 직선 같은 삶에 신께서 공들여 그려 넣은 쉼표가 될 수는 없을까?
나이가 들면서 젊은 시절처럼 군대나 시험에 관한 꿈을 꾸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예전의 트라우마가 치유된 거다. 그러고 보면 꿈은 현재의 갈급한 마음이 수면 상태에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럽게 잠든 시간을 활용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게 글의 소재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시간이 잠들기 전과 잠이 완전히 깨기 전 선잠을 자는 시간이다. 잠을 자다가 퍼뜩 무언가 스쳐 가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면 잠자리에 누워서 그게 무언지 골똘히 생각하곤 한다.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한다. 그래서 자기 전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멜로물이나 중국 무협영화를 자주 본다. 영화에서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우연한 기회를 얻어 순식간에 엄청난 공력을 얻기도 한다. 현실로 이룰 수는 없는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상상하며 잠들곤 한다. 잠들기 전에 어수선한 생각을 정리하고 주변을 말끔히 정돈하기도 한다.
삶의 절반 가까이가 잠든 시간이다. 잠든 시간이 행복하다면 인생의 절반 가까이가 행복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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