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빚은 만두처럼
잘 빚은 만두처럼
  • 정정옥 수필가
  • 승인 2024.01.16 18: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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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정옥 수필가
정정옥 수필가

 

새해 첫날 딸아이에게서 사진이 한 장 날아왔다. 불그스름한 속이 알른알른한 갓 쪄낸 만두 한 접시였다.

다른 재료들보다 김치를 좀 더 넣었나 보다. 냉큼 손을 뻗어 입에 넣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연휴에 가만히 있으려니 심심해서 엄마의 레시피대로 뚝딱 만들었단다. 만두가 심심하다고 뚝딱 만들 수 있는 음식인가!

딸아이는 3월에 웨딩드레스를 입을 예정이다.

새로운 출발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기대와 설렘과 두려움과 걱정이 푸른 물결을 끌고 오는 바람처럼 아득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번거로운 만두를 빚었나 싶다.

사위 될 아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나름의 계획을 세웠을 것이지만 마냥 달보드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을 믿지만 지금껏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시댁 식구들과 화합하는 것도 두려울 것이고, 결혼으로 인해 달라질 많은 것들이 마음이 쓰일 터였다.

서른여섯 동갑내기 딸아이 커플은 연애 기간 4년이 다 되도록 비혼주의였었다. 섣부른 참견은 오히려 반감만 살 것 같아서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자친구를 소개해 준다고 했다.

아무래도 결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단다. 남자친구를 데려오기 전, 왜 마음이 바뀌었냐고 물으니 딸아이는 “헤어질 수 없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부모가 바라는 결혼의 조건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애를 믿고, 또 귀한 아들로 자랐을 딸의 남자친구를 믿고 이런저런 허우룩한 마음을 내려놓는 수밖에.

만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요즘에는 마트에서 파는 만두피를 사다 쓸 수도 있으니 피는 사다 쓴다 치더라도, 김치를 다지고 두부를 짜고 돼지고기도 다져 넣어야 하고 숙주, 부추, 당면도 송송 썰어 갖은양념을 해서 소를 만들어야 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를 양껏 넣었다고 맛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너무 두텁지 않은 만두피에 재료 하나하나가 적당한 비율로 잘 어우러지게 정성을 다해야 감칠맛이 도는 맛있는 만두가 된다.

어찌 보면 사람의 성장 과정도 만두를 빚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이에 맞게 먹이고 입히고 사랑과 정성으로 가르쳐야만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며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어릴 적부터 만두 만드는 일을 재밌어했다. 서너 살 무렵엔 반죽을 조금 떼어주면 고사리손으로 조몰락거리며 종일 놀았다. 조금 더 커서는 소를 야무지게 넣어 제법 그럴싸하게 만두를 빚어 놓았다. 자기가 만든 만두를 쪄 주면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만두는 설 명절뿐 아니라 헛헛할 때 만들어 먹는 별미 간식이자 한 끼의 훌륭한 식사가 된다.

카톡으로 날아온 딸아이의 만두 사진을 보니 여러 생각이 오락가락하였다.

어떤 마음으로 만두를 빚었을지 짐작을 하기에 더 애틋한 마음이 인다. 여러 재료가 잘 어울어져 깊은 맛을 내는 만두처럼 사위는 물론 시댁 식구들과도 살뜰한 정을 나누고 살기를 기도한다.

그러고 보니 냉동실에 저장해둔 만두가 떨어 진지 한참이나 되었다. 오늘은 나도 만두 만들 채비나 해야겠다.

만두를 만들면서 올해라는 새로운 시간을 어떻게 빚어야 촉촉하고 고소한 맛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딸아이의 새날들이 꽃핀 숲의 향기로 가득하기를 염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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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리사 2024-01-22 18:49:01
너무 좋은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