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이 보고 싶다
참 많이 보고 싶다
  • 장은겸 청주시 하석보건진료소장
  • 승인 2024.01.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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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은겸 청주시 하석보건진료소장
장은겸 청주시 하석보건진료소장

 

겨울이면 아버지는 집 근처 논에 물을 대어 놓으셨다. 날이 추워지면 꽁꽁 얼었고 동네 아이들이 모였다. 송판을 이어 만든 앉은뱅이 썰매와 막대기 끝에 못을 박아 꼬챙이를 만들어 주셨다. 얼음판에서 친구들과 썰매로 시합을 하기도 했고, 밀어주다 넘어져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엉덩방아를 찧어 눈물 쏙 빠지게 울기도 했다. 그나마 썰매도 없는 친구는 갈색 고무통에 구멍을 뚫어 끈을 달아 끌기도 하며 해지는 줄도 모르고 얼음판에서 겨울을 보냈다.

요즘 흔해 빠진 장갑 하나 없이 꽁꽁 얼어버린 손이랑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어도 신이 났었다. 누런 코를 질질 흘리며 훌쩍이던 생각이 나는 것은 아마도 찬 공기 탓이었지 싶다. 휴지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다 보니 코가 흐르면 훅 들어 마시기도 하고 소매에 닦기도 해서 늘 허옇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요즘이야 콧물만 조금 흘러도 진료를 받는 시절이지만 그때는 그냥 자연치유 만 기다렸던 것 같다.

한바탕 놀다 집에 들어가면 들기름 내가 진동을 했다. 어머니가 빈대떡을 부치는 냄새였다. 부엌문 뒤에 화덕을 만들어 놓고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음식을 하셨다. 들기름을 넣고 무우 꽁다리로 벅벅 문지르고 신 김치 송송 썰어 넣은 김치전이 지글지글 소리를 낸다. 워낙 빈대떡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밥 대신일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빈대떡 반죽을 늘 찬장 어딘가에 해 놓으셨고 지금도 친정에 가면 빈대떡 반죽은 늘 준비되어 있다. 그때 먹었던 빈대떡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몸이 안 좋은 탓에 어머니는 일터로 나가셨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어머니 역할을 대신하셨다. 학교에 갔다 오면 학교 준비물부터 챙겨주시던 자상한 아버지셨다. 공책 검사도 빼놓지 않았는데 크게만 적혀 있으면 받아쓰기가 엉망인데도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신문에서 아는 한자를 말하면 용돈을 주실 정도로 한문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를 하시기도 했다.

아버지가 가시던 날, 병환이 위중하단 말을 듣고 병원으로 가던 날이 공무원 임명장을 받던 날이었다. 동지(冬至)가 지난 추운 날 바람도 많이 불고 눈발이 날리던 날 밤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 30여 분의 시간이 왜 그리 길던지, 날 낳아주고 길러주신 감사 인사는 할 수 있게 제발 절 기다려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갔다.

하얀 종이처럼 창백해진 아버지가 가는 숨 몰아쉬며 날 맞이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아버지가 있어 나의 삶은 빛이 났고 아버지가 있어 주셔서 행복했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 하늘에서는 아프지 않은 다리로 고생하지 말고 건강하셔야 해요”라고 말하고 볼에 감사의 입맞춤을 해드렸다.

그 어떤 몸부림도 없었고, 그 어떤 눈물도 없이 미소 지으며 지긋이 가족들을 바라보셨다. 어느 나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극에서 봐오던 온화한 임금님의 모습이었다. 난 아버지가 천국으로 가셨다고 믿는다.

오늘은 진료소 밖 창가에 눈발이 날린다. 아버지가 참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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