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주유소
단골 주유소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4.01.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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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오래전의 일이다.

시골 친정집에 갈 일이 있어 다녀오다가 고속도로에서 내 차가 퍼져버린 적이 있었다.

그땐 그저 1만키로에서 엔진오일을 갈아야 한다는 것 정도 알고 있었을 때였다. 그냥 굴러가니까 그저 달릴 줄만 알아서 마음 놓고 장거리까지 두려움도 모르고 다니던 중이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일이다.

하여튼 엔진오일을 갈아야 할 시기가 한참 남았다고 알았기에 마음 놓고 장거리운행까지 시도한 거였는데 여산 휴게소 가까운 고속도로에서 그냥 멈춰 서고 만 것이었다.

엔진오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내 차는 고속도로에서 섰고 엔진 볼링을 하기 전에는 어쩌지 못하는 형편이 되어 나는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러고 나서는 5000키로에서 7000키로만 되면 어김없이 카센터를 찾곤 하면서 보낸 세월이 꽤 오래 흘렀다.

이래저래 새 차로 바꾸었다. 새차에 새 정이 들기도 이른 어느 날, 기름이 간당간당해서 한 주유소에 들른 적이 있었다.

주유기 옆에 차를 세우는데 사장인 듯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미안하지만, 오늘은 다른 주유소를 이용하라”고 한다.

기름탱크에 금방 기름을 주입해서 아무래도 기름이 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차라서 더욱 넣어 드릴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세상에 한 푼이라도 수입을 올려야 하는 것이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 아닌가?

휘발유라고 다른가?

보통은 그냥 차가 망가지든 말든 눈 딱 감고 기름을 넣어줘도 물 떠먹은 자리처럼 아무런 표시도 나지 않는 것을 굳이 밝히며 다른 곳을 이용하라니….

이십여 년 운전하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말을 들은 것이다.

주유소 사장님은 고객을 가족같이, 고객의 차를 내 차같이 아끼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분인 것 같아 감동이 밀려들었다.

나는 마침 바쁜 일도 없고 해서 다음 날 다시 찾아가 기쁜 마음으로 주유를 했다.

적어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장사하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통하는 것이 있어선지 기름을 넣으러 갈 때마다 유심히 살펴보곤 하는데 많은 차가 빈번하게 드나들곤 한다.

요즘 문 닫는 주유소가 늘어간다는데 지방도로의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서도 단골이 꽤 많은 듯하다.

내 집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20키로 남짓하다.

내 집 가까이 있는 주유소 말고도 3개의 주유소를 지나야 하지만 그래도 기꺼이 그곳만 찾는 단골손님이 다 되었다.

그곳은 내게 유일하게 믿음을 주었고 내가 대접받고 있다는 뿌듯한 느낌이 들게 한 곳이다.

나는 그 주유소의 몇 번째 단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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