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傳)을 쓰고 있는 현대판 가짜뉴스
전(傳)을 쓰고 있는 현대판 가짜뉴스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4.01.1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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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국민 여러분 나훈아 사망, 김동건 사망, 김우빈 사망, 김연아가 아이를 낳았고, 고우림은 이혼하고 군대에 갔다. 정유라는 (전)박근혜 대통령의 딸이고, 한동훈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은 청남동 술집에서 동백아가씨를 불렀고….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퐁퐁 솟고 아파트에서 군불을 지폈더니 호랑이가 일곱 마리 나왔습니다. 저는 트랜스젠더이며 아이를 스물세 명 낳았는데 국적과 성이 다 다릅니다.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주시면 오 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힌 황금 다섯 돈 행운의 열쇠를 집으로 보내드립니다.

인터넷 발달로 가짜뉴스(Fake news)가 과학기술 틈새에서 선량한 국민을 우롱하는 시대, 인공지능을 이용한 팁페이크(Deep fake) 등장은 세계인을 놀라게 한다. 진짜를 능가할 만큼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가짜뉴스. 언론 매체의 신속성, 정보성, 정확성, 신뢰성을 잃어가는 현실이 혹시 가상공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가짜가 난무한 사회다 보니 진짜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유언비어를 능가하는 가짜뉴스는 속도전으로 희생자를 낳는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음모론은 `조선인 대학살'로 이어졌고 엄마가 들려준 설화나 전(傳)은 모함과 음모로 생명을 앗아갔다. 가짜뉴스가 선화공주와 결혼하고 싶어 유언비어를 유포한 서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저 권선징악으로 장화의 억울한 누명을 누군가가 응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릴 적 호롱불 아래서 심청전, 장화홍련전, 흥부전 등을 맛깔 나게 들려주는 엄마의 이야기에 가슴이 후비도록 속울음을 삼켰다.

“얼마 전부터 장화의 배가 불룩한 것 같아 계속 지켜봤어요. 오늘 장화가 일어나자 아픈 곳이 없나 살펴보니, 이불 속에 이상한 게 있지 뭡니까.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아기를 낳다니 집안 부끄러움도 그런 부끄러움이 없는 거야. 장화를 빨리 없애서 집안의 수치를 막아야죠. 부모 몰래 죽은 아기를 낳은 것을 우리가 모를 줄 알았소? 우리 가문을 더럽힌 장화를 어찌 살려 두겠소.” 픽션으로 짜인 이야기지만 아직도 누명으로 얼룩진 장화의 생쥐 사건은 나를 아프게 한다. 숫처녀에게 새빨간 생쥐를 사생아로 둔갑시켜 죽음에까지 몰고 간 억울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과학기술 발달과 함께 급부상한 인터넷 시대, 누구나 소리를 낼 수 있는 스피커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극적인 가짜뉴스가 무분별하게 떠돈다. 공권력을 잃은 가짜뉴스는 정치적 선동과 분열, 경제적 악영향뿐만 아니라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빨간 생쥐가 숫처녀가 낳은 아이로 둔갑했던 것처럼 거짓 정보는 갑진년 해오름달 진눈깨비처럼 질퍽거린다. 가짜뉴스가 확산하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현실 앞에 법적인 책임이 강력해지지 않는 한 우리 생활에 병원균으로 자리해 사회적 혼란과 선량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사실(fact)을 근거로 전달해야 할 뉴스가 가짜(fake)로 둔갑한 것은 가짜의 뒷자리 k와 e가 사실의 뒷자리 c와 t에 차지하면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책임해졌다. 공권력을 잃은 매체의 신뢰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우리는 더 이상 양치기 소년에게 속지 않는다. 그래도 사실과 거짓 사이에 Fa가 있으니 50%의 가능성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거다. 매체와 국민이 보는 국회에서 확인도 하지 않고 가짜 정보를 밥상머리에 올릴 것이 아니라 강력한 법적 대응을 모색하는 것이 정치인이 책임져야 할 의무가 아닐까? 나 같은 소시민이 서두에 유포한 가짜처럼 `아니면 말고' 식이 되고 만다. 사색보다는 검색으로 기계화되어가는 오늘, 지루한 전(傳)은 이제 그만 쓰고 명석한 통찰력으로 인간성을 회복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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