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혐오정치 청산하나
말로만 혐오정치 청산하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4.01.07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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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지난 6일은 2021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습격 사건이 벌어진지 3년이 되는 날이다.

바이든에 패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의회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5명이 죽고 100여명이 다쳤다. 트럼프의 근거없는 선거 조작 주장이 폭동의 도화선이 됐다. 그 말을 진실로 믿고 정의를 바로잡겠다는 소신으로 행동에 나선 이들이 민주주의 파괴의 선봉에 섰던 것이다. 트럼프는 폭동 며칠 전부터 워싱턴 시위를 알리며 열혈 지지자들을 선동했고 당일에도 “의사당으로 가 지옥에서처럼 싸우라”고 독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폭동에 연루된 1000여명이 체포돼 630명이 기소됐고, 현재까지 11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의회 난입을 주도한 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스'의 간부인 조 비그스와 재커리 렐은 1심에서 각각 17년,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비그스는 법정에서 “군중심리에 휩쓸려 실수를 했다. 평생 속죄하며 살겠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렐은 “나 따위는 관심도 두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거짓을 퍼뜨렸다”는 최후 진술문을 낭독하며 읍소했지만 관용받지 못했다.

트럼프는 의회폭동 3주년을 맞은 그제 선거유세에서 감옥에 있는 폭동 가담자들을 `바이든의 인질들'이라고 묘사하며 그들에게 씌워진 혐의를 부정했다. “진짜 폭동은 불법 이민자들의 물결”이라며 또 다시 혐오의 언어를 동원했다. 여론조사에선 미국인의 25%가 아직도 `FBI(연방수사국)가 트럼프 지지자들을 교묘하게 폭동으로 유도했다'는 가짜뉴스를 믿고있다. 그리고 차별과 증오의 정치로 지지자들을 오도한 트럼프는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의 최강자로 꼽히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야 모두 독버섯 처럼 자란 증오정치가 국민께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고 정치문화 혁신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정치인들의 선을 넘나드는 막말이 지지자는 물론 일반시민들을 자극하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한 혐오를 낳았다”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 직후 여야 지도부는 이렇게 책임을 인정하고 자성하는 목소리를 냈다. 해서 많은 국민은 이번 비극이 상대를 공존이 이닌 척결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혐오정치 청산의 전기가 되지않을까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성찰의 시간은 빠르게 정쟁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다. 사건과 관련도 없는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헬기 이송을 놓고 특혜시비가 불거졌고 급기야 의료계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현장에서 체포된 김씨의 당적을 놓고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김씨의 당적을 공개하지 않기로 해 당적을 둘러싼 여야의 소모적 논쟁은 길어질 것 같다. 김씨를 차에 태워준 사람이 등장하자 민주당에선 배후론을 지피고 있다. 더 이상 혐오정치의 확산을 방관해선 안되다는 목소리들은 빠르게 정쟁에 묻혀가는 모양새다.

민주주의의 산실이라 할 미국은 시민들이 민주 절차를 부정하며 의회를 점거한 퇴행적 사건을 겪으며 민주주의 위기국 평가를 받고있다. 포용과 실용이 실종된 우리 정치가 전철을 밟지않을까 우려하는 소리가 적지않다. 평범했던 시민이 야당 대표를 처단해야 한다는 확신범으로 돌변한 이번 사건을 접하며 걱정은 더욱 깊어진다.

혐오와 대립의 정치가 건전한 시민정신을 오염시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여야 대표의 자가진단은 즉각 실행 모드로 전환돼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를 저주하는 막말로 자기진영의 환호를 구걸하는 졸렬한 작태를 중단하겠다는 선언부터 하기 바란다.

대통령의 결단도 필요하다. 자신과 맞먹는 수준의 국민 지지를 받은 야당 대표와 여태껏 회동조차 하지않는 고집이 악다구니 정치의 출발점이 됐던 건 아닌지 자문할 때이다. 병상의 야당 대표를 위문한다고 해서 대통령에게 손가락질 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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