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이 다른 타자는 배움과 깨달음의 계기
관점이 다른 타자는 배움과 깨달음의 계기
  • 박상아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주무관
  • 승인 2024.01.0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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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박상아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주무관
박상아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주무관

 

최근에 심리학책이나 철학책 읽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나도 철학책에 관심이 생겨 몇 권을 샀지만 읽다가 포기한 책이 수두룩하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칸트, 니체 등 너무 많은 철학자 이름들은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고 철학자들이 말해주는 유명한 교훈들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 적용시키기엔 너무나 심오하거나 진부했다.

그러다 남편의 권유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사기업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휴식기에 있던 나에게 공무원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출근하고 처음 며칠은 민원인 등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해야 하는 환경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낯설고 힘들었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기도 했고 민원인이 나의 행동을 오해함으로 인해 힘든 하루를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런 날은 길지 않은 공직생활에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과연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타자는 깨달음의 계기다”라고 말한다. 관점이 다른 타자를 배움과 깨달음의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는 다른 관점의 가치관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알지 못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알게 될 기회를 잃게 되고 알게 됨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잃고 만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사람, 즉 타자와의 만남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라 할지라도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대화한다면 서로 오해가 쌓여 관계성을 파괴하는 사태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며 하는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자신에게 보이는 세상과 상대에게 보이는 세상은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때 서로 자신의 세계관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으면 그 어긋난 차이가 해소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지금 시대에는 대화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와 자리 자체를 폭력으로 파괴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가 개개인의 가치관을 너무나 완고하게 주장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세계가 객관적 사실이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은 사실은 주관적인 나의 생각일 수 있고 너무나도 명맥하게 생각되는 일이 사람에 따라서는 반드시 명백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로 잠시 멈춰보는 중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나도 앞으로 다른 여러 분야의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게 될 것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처도 받게 될 것이며,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의 행동으로 오해가 생겨 관계가 틀어지게 될 수 도 있다.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은 피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 오늘 읽은 이 책을 꼭 마음에 새겨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며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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