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산다는 건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4.01.0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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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열정의 언어를 뱉어내도 입김으로 얼어붙는 한겨울이다. 한파가 맹위를 떨치는 동지는 겨울의 한 극점이다. 동지가 지나면서 추위는 조금 누그러졌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이 숨죽여 숨어있는 산속의 추위는 풍경마저 무채색이다.

창밖을 보다가 세월도 잠시 얼어서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사람은 시간이 이대로 멈춰도 좋을 것이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에겐 이보다 큰 형벌은 없을 터, 엉뚱한 생각이 스스로 기가 막혀 피식 웃는다.

밤이 길게 들어앉으면 이런저런 생각도 늘어간다.

한해를 돌아보면 아쉬운 게 많은 나날이었다. 하고자 했던 일들은 모두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다.

이루고자 아무리 발 버둥대도 며칠 남아 있지 않는 날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그래서 겸허해지기도 하고 외로움만 층층이 쌓여가는 서러움에 자꾸 울고 싶은 연말이다.

그녀의 소식을 들은 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며칠 전 동짓날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사람에게서 소식이 오면 부고가 대부분이라는 걸 인지하는 나이가 되어보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그녀는 나보다 몇 살 적은 나이임에도 먼저 세상을 떠났다. 화려한 의상과 외로움을 대신하던 웃음 속에는 고달픈 삶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남편과의 갈등에 지쳐갈 즈음 그녀는 이혼하고 아이들과 함께 독립했다. 상처의 공간이었던 집, 가정이라는 곳을 떠나와서 어디로 향해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건 자신의 몫이어서 괴롭다는 아우성도 치지 않았다. 그럴수록 겉모습은 날로 화려해지고 연약하고 부러진 데 많은 마음이 초라해짐을 감출 수 없었다. 겉은 꾸밀 수 있지만 마음은 화장할 수 없었을 터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고 힘들다.

그리고 외롭다. 북적이는 사람들에 치여 피곤을 토로하면서도 문득 혼자라는 사실에 몸을 웅크린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자식과 함께 있지만 결국에는 개별적 존재임을 깨달을 때 밀려오는 고독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고독과의 직면은 언제나 불편하고 두렵지 않던가.

그녀는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서 몸이 허물어졌다.

흔히 사랑의 결핍에서 외로움의 원인을 찾는다. 외로움의 본질엔 사랑의 부재가 아닌 누군가에게 나를 이해시킬 수 없다는 절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들을 건사하면서도 헤어져야 했던 이유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킬 수 없었다고 했다. 결핍을 느낄 때마다 엄마를 원망하는 자식들을 보면서 홀로 얼마나 외로웠을지 타인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의 삶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그리고 흘러간 사람이 되었다. 내가 다른 해보다 심하게 침잠해지고 외로워지는 이유다.

사는 동안 절대 피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죽음과 세금, 그리고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출구가 막혀버린 외로움이다. 끝자락에서는 죽음과 외로움만 남는 게 인생이다. 그래도 해는 바뀌고 새 출발의 기회는 다시 온다. 태양 주변을 돌고 돌아 제 위치에 서는 지구처럼 `다시 한 바퀴'를 소망한다. 앞으로 몇 번의 기회가 올지 장담 할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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