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기(4) - 블랙스완에 초대받다
인도 여행기(4) - 블랙스완에 초대받다
  • 박윤미 수필가
  • 승인 2023.12.28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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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인도 곳곳에 티베트 난민촌은 여럿인데 그 중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가 유명한 이유는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설법이 있을 때는 누구나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것은 7월 말이어서 그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여름에는 라다크에 머문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가서 아침을 먹은 다음 룸메이트 S 언니와 함께 박수 폭포((Bhagsu fall)에 다녀오기로 했다. 힌두사원과 공동 빨래터를 지나 박수 마을을 벗어나니 곧 계곡으로 오르는 좁은 산길로 이어진다.

길은 이 산에서 난 재료임이 분명한 납작한 돌이 깔려있고, 양쪽으로 배수로도 잘 만들어져 있었다. 산자락을 따라 올라가는 산 오른쪽으로 깊은 계곡에 걸쳐있는 오색의 룽라가 바람 따라 한가로이 흔들린다.

쉬엄쉬엄 걸어서 목적지에 이르렀다. 최고 명당에 자리 잡은 `시바 카페'는 이곳이 인도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입구에 선 커다란 돌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Nothing is permanent...... Don't stress too much because no matter How bad the situation is... It will change.'

신비한 푸른빛의 조명 아래 거대한 시바 상, 지구와 토성과 우주가 그려진 푸른 빛 그림들, 이국적인 상징물들을 둘러본 후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가니 박수 폭포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히말라야의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가본다.

혼자였다면 여행 안내서에 나와 있는 대로 여기까지 온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계획에도 없었고 산행 준비도 안 되어있고 비가 올 거라는 예보까지 있었다. 두려움과 기대감 속에 한 발 한 발 오르는데, 한국에서도 보았던 물봉선꽃이 여기에도 있었다. 낯익은 존재 하나로 낯선 풍경이 금방 친근하게 느껴진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조금 오르자 곧 관목과 초본과 비탈을 구르는 크고 작은 돌들이 있는 풍경이다. 노란 꽃, 진분홍 꽃, 보라 꽃, 파란색 꽃... 새로운 꽃들을 하나둘 찾아보는 재미로 제법 가파른 산 사면을 쉬엄쉬엄 오른다. 이미 해발 2,000m가 훨씬 넘은 상황이라 급히 걸으면 고산증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짙은 산안개가 덮치듯 내려온다. 빗방울이 후드득, 발아래 돌에 숱한 점들이 찍혔다. 아쉽지만 내려가야 했다. 다행히 산 중턱에 허름한 간이매점이 있다. 올라갈 땐 폐점인 듯 보였는데 주인도 나타났고 건장한 외국인 남녀 넷이 커다란 배낭을 내려놓고 비를 피하고 있었다. 우리도 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뜨거운 짜이를 시켰다. 비는 잠시 부슬거리다 멈췄다.

이내 언제 흐렸냐는 듯 밝은 햇살이 비추고 산 정상이 씻은 듯 말갛게 드러났다. 이제 너희를 내 품에 초대한다고 조용히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우리는 기쁘게 그 초대에 응했다. 저 산 위에 무엇이 있을까?

해발 3,000m가 되는 그곳에도 사람의 집이 있고, 초록빛 풀들을 뜯는 소들이 있고, 집 짓는 재료인 넓적한 돌을 캐는 사람들이 있고, 이 풍경을 보려고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누군가 그 높은 곳에 나무를 심어놓았다. 소들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바람에 꺾이지 않도록 어린나무 둘레에는 돌을 쌓아 만든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저 멀리 히말라야의 산자락에 사람의 집이 빼곡하다.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다. 산자락 훨씬 깊은 곳까지 사람의 발길이 미친다. 이제 내 세계지도 속 히말라야산맥은 더 많은 것을 품게 되었다.

우리는 트리운드(Triund) 캠프 직전에 있는 블랙스완 캠프까지 간 것에 만족하고, 이 정도의 행운에 지극히 만족하며 아래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 하루 누린 모든 풍경과 파란 하늘과 우연한 행운들에 감사하며 내려오니, 마을엔 온종일 세찬 비가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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